나바로 NTC위원장 조언에 트럼프 충동 결정…김현종 본부장은 무리한 요구땐 폐기 가능성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파 보호무역주의 참모들의 권유에 충동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미국의 한미 FTA 폐기 압박과 관련해 양국 간 교역 불균형의 구조적 원인부터 분석하자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던 우리 정부는 공세적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미 정치 전문 온라인 매체 ‘더 데일리 비스트’는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결정 배경에는 참모들이 미국 우선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부담이 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대신 한미 FTA를 선택하라는 권유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여기에는 강경파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의 조언이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름 한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NAFTA 폐기 문제를 놓고 고민하자 나바로 위원장이 “NAFTA를 철회하고 싶다면 한미 FTA에 대한 공격 쪽으로 초점을 다시 맞추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이 현실화할 경우 국제적으로 어떠한 함의를 가질지 깊은 고려 없이 동의했다며 충동적인 면이 적지 않았다고 더 데일리 비스트는 지적했다.
나바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FTA에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로, “한국과의 협정으로 우리는 일자리 10만 개를 잃었다”면서 “무역 적자는 두 배로 증가했고, 손해의 75%는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의 통상 압박이 고조되자 우리 정부도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12일 정부와 여당에 따르면 김현종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측에 “한국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며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실제로 한미 FTA가 파기될 수도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이는 그동안 ‘한미 FTA에 대해 폐기 자체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방어적 자세에서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폐기도 불사할 만큼 결연한 자세로 미국의 압박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한미 FTA는 폐기 통보 후 90일이 경과하면 양국 간 관계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한미 FTA가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측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어 한국이 트럼프의 한미 FTA 종료 위협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폐기는 어느 일방의 협상 카드가 아니며 양국 모두가 가진 카드임을 항상 유념하고 있다”며 “미국 측이 폐기를 압박하며 불합리한 요구를 해올 경우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