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고향 길, ‘공짜’ 고속도로?

입력 2017-10-1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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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오래전, 서울시 시정개혁위원을 할 때의 일이다. 소방행정 분야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집이나 아파트 열쇠를 두고 나왔거나 분실한 사람들 때문에 출동하는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뒤 소방 관계자에게 물었다. “인건비와 차량운영비 등 출동비용이 들 것 아닙니까?” “당연하지요.” “그건 누가 부담합니까?”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하는 거죠.” “국민 전체가 나누어 낸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열쇠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도 같이 부담한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토론이 이어졌다. “소방서가 아니면 잠긴 문을 못 엽니까?” “아닙니다. 동네 열쇠 수리공 등이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나 노인을 급하게 구제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연결해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됩니다.” “그런데 왜 출동합니까?” “안 하면 야단이 납니다. 소방서가 뭐 하는 놈의 소방서냐고. 견디기 어렵습니다.”

공공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공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수혜자 개개인의 이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은 개인이, 국가적 의미가 크거나 국민 모두의 이익이 되는 것은 국가가 집합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한 관념이 약하다. 공공서비스를 비용이 들지 않는 것쯤으로 여기거나, 비용이 들어도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공정성 문제도 마찬가지, 누가 부담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인식도 높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오랜 권위주의의 역사 속에서 국가 운영은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다. 세금은 ‘뜯기는’ 것이고, 이래 쓰나 저래 쓰나 뜯어가는 자들 마음대로 쓰는 것이었다. 이런 판에 그나마 작은 혜택이라도 있으면 “이게 어디냐”, ‘공짜’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세금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내는 사람도 많다. 면세자 비율이 소득세는 48%, 법인세는 47%,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비용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그만큼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많이 한다. 너도나도 기대하거나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개개인에게 혜택이 가는 서비스를 많이 하게 된다. 내 돈이 아닌 만큼 지출의 효용성에 대한 생각을 적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집합적 서비스보다는 우선 내게 혜택이 돌아오는 서비스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선심(善心) 행정’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바로 이런 데서 출발한다. 복지만 해도 정작 공을 들여야 할 평생교육 체계의 강화나 실업안전망 강화 등 집합적인 서비스는 뒤로하고, 청년수당과 최저임금 인상 등 개인 주머니에 돈 넣어주는 것을 먼저 하게 된다. 아파트 문 열어주는 것이 필요한 소방 장비 구매나 교육훈련에 앞서는 것처럼 말이다.

추석날 고향에서 차례를 지낸 후 고속도로로 귀경했다. 통행료 면제라 그랬을까. 차는 밀리고 시간은 많이 걸렸다. 지체와 정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공짜’의 명분은 뭐지?” “결국은 어딘가에, 또 어떤 형태로건 반영될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거지?”

며칠 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공익 차원에서’ 또 ‘내수 진작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했다. 잘못된 느낌일까? 부담의 주체나 공정성에 대한 고민도, 내수 진작 효과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시혜적 태도, 즉 인심 좀 쓴다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이 느껴졌다.

받아야 700억 원 정도인데 뭘 그리 따지느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얼마가 되었건 그러한 고민과 설명이 없을 때 우리는 이를 ‘선심 행정’이라 하고 ‘대중영합주의’라 한다. 면제를 하더라도 그만한 고민이 있고 난 다음이어야 하고, 또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그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도로공사의 부채가 27조 원, 그래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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