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명절 증후군’ vs. ‘Holiday Syndrome’

입력 2017-09-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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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맘때 즈음이면 ‘며느리 명절 증후군’이 미디어의 단골 주제로 등장하곤 했는데, 요즘은 상황이 다소 나아진 모양이다. 한데 영어에도 ‘Holiday Syndrome(번역하면 정확히 ‘명절 증후군’)’이란 단어가 있는 걸 보면, 명절 증후군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듯하다.

다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서구의 ‘홀리데이 신드롬’과 우리네 명절 증후군 사이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서구에서는 명절임에도 함께할 가족이 없거나 있다 해도 가족이 남만도 못한 경우, 이들이 겪는 고통·아픔·외로움·서러움 등을 지칭할 때 ‘홀리데이 신드롬’이란 표현을 쓴다. 주위를 돌아보면 너 나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도대체 내 가족은 어디 있는 것일까’, ‘왜 가족들 사이엔 분노와 증오만 남았을까’ 하면서 우울증과 무력감에 빠지는 ‘홀리데이 신드롬’으로 인해 명절이 다가오면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홀리데이 신드롬의 주범인 셈이다.

반면 우리네 경우 가족에게 의당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로 인한 부담 및 스트레스가 명절 증후군의 주범인 듯하다. 명절이면 시부모님 계신 곳을 향해 ‘민족 대이동’을 감행하고, 종일토록 부엌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며느리가 경험하는 분노와 좌절감, 더하여 결혼 적령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싱글인 자녀들이 부모와 친척들로부터 결혼 압력을 받을 때 체험하는 갈등과 스트레스가 명절 증후군의 주를 이루고 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오히려 명절이면 가족을 찾아 나서는데, 정작 가족주의가 발달해 있다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가족을 벗어나려 함은 역설치고는 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명절이면 가족과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풍습에는 일정한 사회적인 기능이 있음은 물론이다. 소원했던 가족들 간에 안부도 챙기고 단합을 다짐하며 덕담을 나누는 자리는 가족의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구성원들 간 결속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지켜왔으리라 믿는 아름다운 풍속도, 실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야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역사학자들 주장이 있는가 하면, 최근 이삼십 년 사이에만도 조상님 중에 누구를 모셔야 하는지, 제사상에 어떤 음식을 올릴 건지, 누가 절을 할 자격이 있는지 등에 대해 두루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이제 서울 사는 자식네 집으로 역귀성(逆歸省)하는 부모가 늘고 있고, 딸만 둔 사돈댁을 배려해서 명절 당일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자식들과 함께 미리 성묘를 다녀온 후 추석 연휴에 가족여행을 즐기는 분들도 많아지고, 서구식 양계제(兩系制)를 모델로 삼아 한 해는 시댁 먼저 가고 또 한 해는 친정 먼저 가는 가족도 증가하고, 아들딸 며느리 사위가 부엌일을 공평하게 나누어 하도록 진두지휘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단다.

유교 문화권인 싱가포르에선 추석이면 한동네 이웃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약간의 과일과 음료수를 사들고 친지를 방문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불교 문화권인 태국에서는 친족 관계를 부계(父系)냐 모계(母系)냐 따지지 않고 ‘실용적(practicality)’으로 형편에 맞추어 명절을 함께 지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명절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절에 누구와 무엇을 나눌 것인지 그 의미를 지켜냄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형식만 남은 무늬만의 명절로 인해 괜스레 고통받고 부당함에 분노하기보다는, 책임과 의무를 잔뜩 짊어진 가족의 짐을 홀가분하게 덜어 주었으면 좋겠다. 굳이 혈연을 나눈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껏 의지할 누군가가 가까이 있으면 고마운 일이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감의 의미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일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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