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규 산업칼럼] 반도체 호황기 때 고도화 전략 수립해야

입력 2017-09-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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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반도체 산업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반도체업이 국내 경기 침체를 막고 있는 까닭이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 증가를 주도하고 무역수지 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제조업 가동률은 하락세이지만, 반도체업은 100% 완전가동 중이다. 그야말로 반도체가 없었다면 국내 경기는 심각한 침체 국면에 빠져 있을 형국이다.

그러면 국내 반도체업은 계속 호경기를 구가할 수 있을까? 경기 순환주기나 세계시장 판도 변화 그리고 국내 경쟁력 등을 감안할 때 결코 장담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국내 반도체업이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호황기 때 중장기 경쟁력 강화 방안을 서둘러 수립하고 이를 적극 실현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과거 경기변동 경험에 의하면 호황기 뒤에는 극심한 침체 국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반도체 경기는 외환위기 전후로 두 번의 초호황기가 있었다. 외환위기 직전 1993∼1995년과 이후 2002∼2004년이다. 그 당시에도 반도체가 국내 수출과 성장을 주도했으나, 이후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체 경기가 크게 위축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시기 모두 반도체 호황이 끝난 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4차 산업혁명의 확산으로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해 줄 공급 능력이 부족한 데서 비롯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집중투자된 첨단반도체 생산이 내년 이후 본격화하면 공급 부족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통신 분야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사는 2019년부터 반도체 경기 호황이 점차 끝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반도체업의 발전 추세가 변하고 있는 점도 국내 업체들의 지속 성장 여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세계시장에서는 초연결화와 초지능화를 심화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여 △저전력 지능화 △신수요 창출 △서비스 산업화라는 새로운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먼저 생산 부문에서 인공지능 등을 구현하기 위한 거대 데이터 용량과 빠른 속도를 소화할 수 있는 초고속 두뇌모방형 반도체, 초경량 설계기술 고도화,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소재 반도체 상용화가 진전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스마트폰 일변도에서 벗어나 Io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는 다양한 신수요 창출 능력을 중시하는 추세가 일고 있다.

생산 생태계 또한 급변모 중이다. 지금까지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였으나, 반도체 응용 분야가 확대되면서 특정 기능에 특화된 다품종 소량생산 물량이 증가하고 있다. 소규모 물량을 소화하여 대량생산 체제에 접목할 수 있는 전문화된 설계서비스업의 발전이 필요하다.

국내 반도체업은 아쉽게도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공정기술은 자랑하나, 다양한 신수요를 개발할 수 있는 설계기술은 크게 미흡하다. 메모리 분야는 국내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58%를 차지하나,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는 4%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자동차나 가전을 비롯하여 경제·사회 전반이 빠르게 지능화되는 과정에서 급속히 시장이 커질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대한 대비가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풍부한 내수시장에 힘입어 시스템반도체 분야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뒤떨어진 시스템반도체의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 설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대부분 대기업에 속해 있어 중소 설계 기업의 성장이 지체되고 있다.

산학연계로 시스템설계 전문학과 운영을 고려하는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으로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 새로운 수요에 부응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해 반도체 신기술 기반 창업 열풍도 불러일으켜야 한다.

반도체업의 지속 성장을 통해 국내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해야 좋은 일자리도 계속 늘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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