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_여성단체를 찾아 (15) 세계여성이사협회] “전문성·변화 원하는 기업이라면 이사회에 여성 앉혀라”

입력 2017-09-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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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옥 대표(전 푸르덴셜생명 회장) 인터뷰

1세대 여성 직장인 ‘금융권 유리천장’ 뚫고

푸르덴셜 입사 ‘국내 최초 여성사장’ 타이틀

2016년 협회 창설 ‘女인재 DB구축’ 이끌어

인구 절반은 여성인데 女CEO는 1% 불과

이사회 女의무할당제 도입해 다양성 충족을

여성 스스로도 소통·겸손·도덕성 잃지 말아야

▲사진설명=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가 서울 강남구 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 대표는 1세대 여성 직장인으로 두터운 금융권의 유리천장을 뚫고 오너일가가 아닌 여성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지난 6월까지 푸르덴셜생명 회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하고 세계여성이사협 한국지부를 이끌고 있다. 이동근 기자 foto@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제대로 사회진출을 해야합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기업의 여성임원은 2%에 불과해요. 여성CEO는 1%도 안 되죠. 굉장히 취약합니다. 획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해요. 여성을 여성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양성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사회나 조직을 다양하게 이끌면 전문성이 높아지고, 더 나은 의사결정이 가능합니다.”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WCD:Women Corporate Directors) 한국지부 대표(전 푸르덴셜생명 회장)가 이 같이 말하면서 조직 내 주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이사회에 여성참여를 확대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여성을 적극적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이사회의 여성 참여의 중요성을 알리고, 여성 경영인들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가 탄생했고, 그는 수장의 자리에 앉아 단체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손 대표의 이름 앞에는 ‘국내 최초 여성금융사 사장’ ‘성공한 여성 CEO’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세대 여성 직장인으로 두터운 금융권의 유리천장을 뚫고 오너일가가 아닌 여성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여성 최초의 매니저, 최초의 상무, 최초의 부사장, 최초의 CEO 등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놓치지 않았다.

손 대표는 1974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95년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체이스맨해튼 은행, HSBC 등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다 1996년 인사부장으로 푸르덴셜생명에 입사했다. 이후 1999년 상무, 2001년 전무를 거쳐 200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인사·재무·홍보 등 경영 전반에 요직을 두루 거쳤고, 2011년부터 대표이사로 일 해왔다. 지난 6월 정년퇴임한 뒤 세계여성이사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WCD 창립 1주년...“이사회 여성 늘리려면 할당제 필요” 한목소리=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가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손 대표를 비롯한 44명의 창립 멤버들이 곳곳에서 여성이사 확대의 중요성을 알렸고, 단체의 존재감을 드러낸 결과 1년 만에 회원수가 약 30% 증가해 60여명이 활동 중이다.

“열심히 했죠. 결속력이 생기면서 이제 서서히 자리가 잡혀가고 있어요. 2015년부터 1년간 준비해서 지난해 9월 단체를 만들게 됐죠. 2달에 한 번씩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하면서 네트워킹하고 서로 성장하도록 돕죠. 멤버들도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해요. 대한민국 최고위직 여성들의 모임인데다 현직에 있는 이사회 멤버만 활동할 수 있거든요. 다들 열정이 대단해요.”

손 대표는 이사회의 여성 수를 늘리려면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조직에서 여성을 발탁하려해도 역량을 가진 인재가 부족하다는 시각을 타파하고자 여성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중요한 책무로 여긴다.

“공기업의 여성 등기이사가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외이사는 3~4명 되지만, 사내이사는 많지 않아요. 유능한 여성 인재를 모으는 작업도 중요하죠. 준비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여성인재 추천 시 여성 인재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해요.”

◇‘전문성’ ‘소통’ 핵심 역량…‘도덕성’ ‘겸손’ ‘사심無’ 리더의 중요 자질=손 대표는 여성이 조직에서 성장하려면 전문성과 소통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삶은 소통이다’라고 할 만큼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조직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로 꼽았다.

“여성이 우선 서바이벌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해요. 자신이 맡은 업무를 해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형성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해요. 조직 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문제지만, 잘 해내야죠. 최근 ‘소통’을 주제로 한 강연 준비를 하면서 공부를 하다가 깨달았어요. ‘내가 소통을 잘해서 CEO가 됐구나’하고요.(웃음)”

그는 매번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마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를 평가히고 성찰했다. ‘사심은 없는가’ ‘겸손을 유지하고 있는가’ ‘도덕성을 잃지 않는가’ 등이다.

“실적과 성과는 나쁘면 회복하면 되지만, 도덕성을 잃으면 회복할 수 없죠. 존경을 받지 못하면 리더라고 할 수 없어요. 겸손함을 잃지 않고, 항상 사심보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죠. 이제 유리천장 유리벽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긍정적인 마음과 열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면 좋겠어요.”

◇나도 ‘경단 유혹’ 경험…똑똑한 지식보다 지혜로움 갖춰야=손 대표도 워킹맘이다. 1세대 여성직장인이니 워킹맘 1세대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일하기에 지금보다 더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근로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물론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으로 경력단절의 유혹이 있었지만, 꿋꿋이 이겨냈다.

“아이돌보미의 힘을 빌려 두 아이를 키웠죠.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그만 둬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못 그만두겠더라고요. 일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거죠. 가정과 직장을 잘 꾸려나가는 건 여전히 어려운 문제에요. 지금의 사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40년을 일했는데, 내 딸들이 저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더군요. 세상이 바뀌어야해요.”

그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개인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에서 육아휴직제도가 가장 잘 돼있는 나라지만, 실효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육아시설도 부족하다.

“정부는 유아시설을 확충해주고, 기업은 남자들을 야간근로를 없애고 일·가정양립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바꿔야해요. 남자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부부가 공동육아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죠. 여성들은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져야죠. 왜 자꾸 그만두려고 하나요. 똑똑함 지식보다는 지혜로움이 많아야 오래 일할 수 있어요. 마음을 단단히 해서 경력단절하지 않도록 해야해요.”

마지막으로 손 대표는 여성들에게 ‘불가능한 꿈을 꿔라(Dream impossible future)’라고 조언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며, 꿈을 포기하지 말고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또, 여성후배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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