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치킨 값과 국가

입력 2017-09-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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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 특사로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다보스에서 열리니 다보스 포럼이라 하는데, 이 스위스 산간 휴양지는 서울의 40%쯤 되는 면적에 인구는 1만 명 남짓, 그야말로 한적한 곳이다.

이곳에 2000명 정도가 참석하는 포럼이 열리니 먹고 자고 하는 문제가 어떠하겠나.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각국 정상 등 참석자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행원들을 적게는 몇 명, 많게는 몇 십 명씩 데리고 참석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호텔이든 민박이든 숙박비는 ‘바가지’, 그것도 포럼 전체 기간인 5일 이상을 예약해야 했다. 각종 서비스에 따른 비용도 장난이 아니었다. 와이파이가 안 되던 때라 인터넷을 호텔에서 특별히 제공하는 케이블로 연결해야 했는데, 이게 하루에 100달러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농담 삼아 다른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과 이 이야기를 해 봤다. 귀한 손님들 불러놓고 이렇게 ‘바가지’를 씌우느냐고. 비싸다는 것에는 모두 같이 웃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가지’ 운운한 부분에 있어서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 수요가 공급을 앞서니 당연한 일 아니냐는 것이었다.

순간, 우리는 이런 문제에 유난히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와 공급이 어떻든 평소보다 비싸게 받으면 ‘바가지’라 비난을 한다. 그리고 바로 국가가 개입한다. 행정규제나 지도를 한다고 나서는가 하면, 원가 공개다 가격 제한이다 하며 법을 만드는 등 법석을 떤다.

왜 그럴까? 국가가 시장을 지배하던 문화에 익숙한 탓이다. 그래서 쉽게 규제만 하면 해결이 된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권위주의 정부가 만들어 놓은 몹쓸 문화 중의 하나이다. 정부나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상당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의 생닭 원가 공개 문제만 해도 그렇다. AI 문제로 치킨 가격이 올라가자 정부가 바로 생닭 원가를 공개하는 가격공시제를 시행하고 나섰다. 행정지도 차원인가 했더니 웬걸, 재미가 붙었는지 이제는 아예 법으로 만들어 의무화하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가격에 대한 일차적인 견제는 시장에서 일어나야 한다. 비싸면 소비자가 먹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음식, 즉 대체재를 찾으면 된다. 아니면 더 많은, 또 더 다양한 공급자가 나오는 등 공급 사이드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공급자 스스로 원가를 공개하고 나설 수도 있다. 그게 시장이다.

시장에 맡기는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시적 불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좋은 것을 싸게 먹을 수 있는 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까지 참고 견디기도 해야 하고, 다른 음식을 찾아 나서기도 해야 한다. 일종의 소비자의 의무라 하겠는데,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무를 다 하게 되어 있다.

국가는 이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시장 안에서의 변화와 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와 생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치킨의 경우 토지나 주택과 같이 공급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재화도 아니고 대체재가 없는 재화도 아니다. 정부가 먼저 나설 일이 아니다.

실제로 원가 공개가 정부의 뜻대로 작동하고, 그래서 공급자들이 가격 문제에 집착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공급은 늘지 않을 것이고 서비스 개선 등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있는 혁신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나아가서는 배달원의 처우 개선도, 치킨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 개발도 그만큼 어려워지게 된다.

시장 안에서의 혁신과 경쟁,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식문화의 발전과 서비스 산업의 발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때에, 또 치킨업계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처우 문제와 인권 문제 등이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 꼭 이래야 되겠나.

너무나 쉽게 규제의 ‘칼’을 꺼내 드는 이 버릇은 언제쯤 고쳐질까? 소비자가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하게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깨닫게 될까? 대중적 정서만 생각하는 정부의 규제 매너리즘이 국가와 시장 모두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까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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