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수와 진보(2)

입력 2008-01-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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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통념이 달라지고 행동양식이 바뀌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혁 내용이 국민 정서와 조화되고 융합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 정서와 조화•융합하려면 개혁 내용이 국민 정서와 맞아야 한다. 따라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일이 걸린다. 개혁은 그래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범국민적 의식의 장정(長征)이라고 말한다.

파괴는 많고 창조는 적은 혁명이나 개혁은 실패한다. 새로운 틀이 나오지 못하면 옛날 틀이 다시 되살아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20세기 초의 소련 혁명이 실패한 궁극적인 원인은 파괴는 많고 창조가 적은데 있었다. 창조가 적었으므로 옛 제정러시아 시대의 정치 스타일이 그대로 공산당에 의해 계승되어 소련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지도자가 그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경우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Populism)을 추구하는 경우 개혁으로 인해 오히려 나라가 망하는 경우가 있다. 히틀러와 페론이 좋은 예이다. 히틀러는 국민을 선동하여 자신의 광신적이고 반인류적인 정책을 펴나가다 나라를 망치게 했다. 페론은 대중적 인기영합 정책으로 노동자들에게 무한정 퍼주다 국가 재정을 파탄시켜 아르헨티나를 삼류국가로 전락하게 한 장본인이다.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자면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덕성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그 지도자를 믿는 강력한 개혁세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행히도 지금까지 어느 지도자도 수기치인의 덕성과 탁월한 통찰력, 강력한 리더십을 다 갖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자연히 그들이 추구한 개혁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개혁을 추구한 지도자별로 그들의 공과(功過)를 여기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박정희 대통령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구한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는 60년대 이후 개발위주의 강력한 경제개발정책을 시행해 이 분야에서는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 이외의 부문, 특히 정치•사회분야에서는 많은 모순과 착오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의 개발위주 경제정책은 70년대 이후 산업간•계층 간 균형발전 정책으로 전환돼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는데도 이를 수행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정권 붕괴라는 불행한 사태를 촉발시켰다.

■ 김영삼 대통령

그가 문민정부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국민역량을 모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개혁 논리가 좀 약했고 군사정권 시절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다.

경제부문에서 김대통령은 실명제를 실시하여 경제부문에서 개혁을 이루려 했다. 그러나 실명제는 제도적 개혁일 뿐 경제전반에 걸친 환경과 현실은 그에 못 미쳤다. 특히 김대통령은 실명제를 주요 개혁 조치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차례의 이벤트로 생각하는 바람에 더욱 그 효과를 증폭시키지 못했다. 거기다 국민들의 인식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실명제는 좋은 제도로서 경제개혁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원할 제반 정책이 미흡했다. 또한 당시 정권이 개혁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개혁을 단순한 제도의 차원을 넘어서 개혁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데 실패했다.

■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정권 내내 범국민적 정책보다는 지역 분권적 정책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김 정권은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정권 말기까지 개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중적인 인기영합 시책에 치중한 나머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개혁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제시했다 하더라도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의 포퓰리즘에 의한 정책발상이나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었다. ‘개혁’이라는 말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권적 이득을 가장 많이 취한 대통령이 바로 그다. 통치 기간 내내 그가 한 일은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거나 특정 정파, 특정 인사들을 우대하는데 소비했다.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국익보다 특정 비호세력의 확장과 자신의 이익에 골몰했다. 그 여파로 국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편가르기의 어느 한 쪽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그토록 장담하고 강조했던 국가 주요 경제정책에 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는 IMF외환 위기 극복의 경우 일시적인 겉치레 대책으로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IMF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 저하에서 비롯됐다. 국제경쟁력 저하에 따른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결국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당시 국내 유입된 외국자본들이 한꺼번에 철수하면서 외환 공백사태가 발생, 결국 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서는 안 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은 바로 국제 경쟁력 회복이었다. 경쟁력을 회복하자면 우선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부문의 구조조정 및 ▲생산성 향상 ▲금융산업의 선진화 등이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행된 경제정책은 이 같은 국가 산업 부흥정책을 추진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생산 및 투자 부문에 국가 재원을 투입하지 않고 소비부문에 훨씬 많이 투자했다. 즉 돈이 가야할 곳에는 적게 가고 가지 않아도 될 곳에는 돈이 쏟아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메어졌다. 그 결과는 보나마나다.

더구나 구조조정도 경제 이론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왜곡조정되었고, 그나마 그 진행 과정과 실적이 미흡했다. 그 부작용의 여파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다. 경제정책 방향이 잘못되었고 투자재원이 자꾸 다른 방향으로 가다보니 기업의 생산성 향상 노력도 많은 장애를 받았다. 과격 노조에 의해 노동생산성은 지지부진했고, 기업의 R&D투자 역시 당해 기업의 투자여력 부족으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금융산업 역시 경쟁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외국 금융회사 진출과 그들의 자본유입으로 M&A(merger & acquisition) 당하거나 시장을 잠식당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저성장과 경쟁력 저하로 자꾸만 세계 시장에서 뒤처졌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쟁국들인 중국과 동남아 여러 국가들은 무섭게 성장했고, 일본 경제는 긴 불황터널에서 벗어나 회복되었다. 우리가 거북이걸음 하는 동안 그들은 토끼 뜀박질했다.

김대중 정권이 잘못한 경제 정책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정책이 2000년 이후 시행한 건설경기 부양과 전 국민 대상의 카드발급 정책이었다. 내수경기를 부양한다는 미명아래 실시된 이 같은 잘못된 정책으로 국내 경기는 그 이후 “거품경제”가 되어 부실화됐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가 몰려 왔고, 물가는 끊임 없이 오르고, 경제는 부실화돼갔다.

그 결과 수치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는데 실제로는 실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른바 “성장 속의 실업사태”(jobless growth)가 만성화되고, 국민 대다수의 경제적 불만은 점차 고조되었다.

또 한가지 부작용은 카드부실화로 인한 대규모 신용거래 불량자를 양산한 현상이다. 이로 인해 금융산업이 왜곡되거나 마비되는 사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카드빚을 갚으려 흉악한 사회범죄를 일으키는 사회병리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애초에는 선량한 시민이던 그들이 어느새 흉악한 범죄자로 변한 것은 아무래도 김대중 정권의 무책임하고 임시방편적인 정책이 한몫 거들었다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부르짖은 개혁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라기보다 김대중 정권에 이은 편가르기 정책을 확대증폭시킨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개혁은 선량하고 건전한 시민 모두를 위한다는 당위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제반 시책을 세심히 살펴보면 특정계층, 특정 정파, 특정 이익단체들을 아군으로 삼고, 다른 쪽은 사실상 적(敵)으로 삼는 그런 성향을 보였다.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어느 시민이든 그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인 이상 국가는 모든 시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모든 계층을 포용하는 법적•규범적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은 유독 자기편만 고집하고 상대편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정책을 고수했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간의 사회 전 분야를 살펴보자. 정치부문은 누구나 잘 알다시피 대통령부터 좌충우돌하고 각 정파들이 서로 이권 다툼하다 보니 엉망이 되었다.

경제부문도 정부가 그럴듯하게 치장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이뤄지는 게 거의 없다. 우선 실효성 있는 농업•농촌정책이 부재하고, 중소기업 육성, 수도권 인구 억제 시책, 교육정책, 토지투기 억제책 등 당면 현안들이 뚜렷한 대안 없이 표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산업 부문에서도 정부의 실효성 있는 중장기 정책이 실종된 듯 하다(정부는 그러나 거의 매일 좋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산업경쟁력 제고와 투자확대 부분 등은 정부 시책보다는 민간 기업 자신들이 힘겹게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정부. 기업. 노동자 등이 힘을 합쳐 경쟁력 제고와 기업 수익 제고를 위해 합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 기업, 노동자들이 다들 자기 이익을 위해 서로 별거하거나 때로는 적대적 행동으로 이전투구하고 있다. 이래서는 나라 경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진정 나라를 위하고 경제를 진흥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총화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나마 우리 경제가 버티고 있는 건 민간부문에서 기업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 덕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비전이란 환상이 아닌 현실성 있고 실현가능한 비전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전은 나라 미래에 대한 지도자의 실현가능한 꿈이다. 그 큰 꿈에서 중점적인 행동목표가 도출된다. 이 행동목표를 우리는 전략이라 한다. 이 전략에서 그때 그때의 전술이 나온다. 이 전술이 곧 정부 정책이다. 따라서 정책이 잘 되자면 타당성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하고 전략이 있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현실성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는 사리사욕을 물리치고 “先憂後樂”하는 덕성을 가져야 한다. 성공한 모든 지도자의 공통적인 특성은 훌륭한 덕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능력에 앞서 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지도자가 말은 쉽지만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다. 등소평이나 드골 같은 지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기는 그들이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훌륭한 덕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을 갖춘 비전이 있었고, 비전이 있어서 좋은 전략과 전술(정책)이 나올 수 있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필자가 보기에 아직 그런 덕성을 갖춘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덕을 갖춘 지도자상이 있다면 희생, 겸손, 솔직, 정직, 성의, 능력과 지도력이라는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개혁은 자율적으로 성취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외국이나 외국기관에 의해 타율적으로 개방하거나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경우가 있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은 일본의 강요에 의해 일본의 종속화를 촉진하는 개혁이었고, 1997년 IMF 개혁도 외국기관에 의한 타율적 개혁이었다.

스스로 하지 않는 개혁, 즉 타율적 개혁에는 많은 댓가가 치러진다. 갑오경장 이후에는 나라가 망했고, 외환 위기 이후에는 엄청난 규모의 재산이 외국인의 수중에 들어갔다. 타율적 개혁에는 공짜가 없다.

IMF 위기 이후 우리나라에는 특히 경제부문의 개혁이 추진됐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외환위기 극복에 관한 성공담은 이제 설득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왜냐면 IMF 외환 위기 이전의 각 종 병폐가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환위기 극복은 끝내 무위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다.

실패의 원인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개혁이 겉치레로 끝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해답을 알면 오늘날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런데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역사는 항상 되풀이한다.

■ 개혁의 실패원인

① 지도자의 비전 부재

역대 대통령 가운데 비전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승만은 나라 창업자로서 나름대로 비전이 있었겠지만, 그 것은 너무 희미하고 스케일이 작았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창업자의 업적이 매우 중요한데, 이승만은 창업자로서 후세에 기준이 될 만한 사회제도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그것은 자신의 비극이자 한국역사의 비극이었다.

박정희도 초기에는 나름대로 이노베이션을 했으나, 지도자로서의 스케일이 작았다. 경제발전에는 공을 세웠지만, 유신정권 수립으로 그 공을 망쳤다. 그 후의 대통령들도 모두 개혁을 표방했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만한 비전과 국가미래에 관한 청사진을 가진 인물은 없었다. 고로 비전이 없기 때문에 전략이 나올 수 없고, 전략이 없으므로 유효한 정책이 나오기 힘들다.

② 개혁에 대한 이해 부족

역대 정권은 모두 개혁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개혁이 오로지 성문적인 부문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고, 입법 처리 몇 개만 하면 개혁이 완성되는 걸로 착각했다.

개혁은 이벤트event가 아니라 과정process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어서 모든 국민의 통념과 행동이 바뀌어야 하는 길고 머나먼 그리고 험한 과정이다. 그래서 개혁을 장정(長征)이라고들 한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에 실패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개혁이 사회의 유기적인 프로세스라는 걸 몰랐는데 크게 기인하다. 그는 70년에 걸쳐 구축된 소련사회의 틀을 불과 몇 달 동안에 날짜를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이후 개혁일정을 정해놓고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다 어떤 예상날짜가 오자 “IMF를 졸업했다”고 선언했다. 이런 선언은 개혁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전혀 돼있지 않거나 크게 부족한데서 오는 무지(無知)의 소치이다.

③ 개혁 주체세력의 미약

역대 정권들이 개혁을 추진할 때 그 추진세력이 너무 미약한 경우가 많았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개혁에 대한 비전이 없는데다 그 추진세력도 미약하다 보니 개혁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개혁을 추진할 만한 인물도 이해도 세력도 부족했다. 특히 가장 급히 개혁돼야 할 대상은 바로 정치부분의 개혁이다. 이처럼 제일 먼저 개혁돼야할 정치가 개혁을 주도한다고 하니 그 개혁이 어찌 제대로 되겠는가. 그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가 취할 개혁의 추이는 향후 우리나라 개혁의 성공여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이후 지난 600여년 동안 개혁다운 개혁을 한 적이 없다. 16세기 이율곡(李栗谷)이나 18세기의 실학파들이 좋은 비전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17세기 대동법(大同法)은 공납(貢納)을 개선하는 제도였지만 그것이 개혁의 차원으로 승화하기는 미흡했다.

1884년의 갑신정변은 개화파가 쿠테타를 일으켜 개혁을 지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지향하는 것이어서 비전 자체가 옳지 못했다. 개화파는 당시의 일본을 우호국으로 간주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개화파는 일본이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이중 얼굴을 보지 못했다. 1894년의 갑오경장 역시 일본을 추종하는 개혁조치여서 그 결과는 나라를 망하게 했다.

■ 지도자의 당면 과제

1) 너무 거창한 목표에 집착하지 마라

개혁이 성공하려면 훌륭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있고, 그 비전을 추진할 전략이 있고, 이를 뒷받침해줄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개혁은 실패한다.

개혁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사항이 하나 있다. 즉 개혁에 앞서 사회 질서를 잘 지키는 일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정의도 필요하고 질서도 필요하지만 정의보다 우선 필요한 것이 ‘질서’라고 말했다. 아담 스미드는 ‘道德感情論’에서 사회에는 ‘자선(benevolence)'과 ’법질서(justice)'가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법질서라고 말했다. ”개혁하려다 법질서마저 못 지키면,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

우리나라도 법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눈높이를 낮추고 실현가능한 것부터 개혁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많은 것들이 있다. 부분적인 성과가 누적되면 큰 성과가 된다.

2) 경제 목표를 경기회복이 아니라 국제경쟁력 제고에 둔다.

일시적인 경기부양책으로는 시민생활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키기 힘들다. 민생안정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바로 국제 경쟁력 제고에 있다. 이것이 경제개혁의 기본방향이다.

그리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제 부문만 따로 떼어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 교육, 문화, 언론, 외교 등 사회 각 분야와 유기적인 보완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가 힘을 얻는다.

현재의 국내외 정세가 꼭 1백년전 구한말 시대와 비슷하다. 내부적으로는 정파간 정쟁이 적대감마저 불러일으키는 듯한 내분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시민은 시민들대로 서로 괴리되어 혼란에 빠져 있다. 경제 상황 역시 버블 경제(거품 경제)의 추세를 보여 부실의 늪 속에서 헤매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한반도 주변 4강이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 대해 그들의 이해관계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들의 이해는 한결같이 동북아시아에서 그들의 이득을 최대한 얻으려는 데 있다. 일본은 그들의 군국주의적 우경화 추세로 만일 동북아 국제정세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경우 또 다른 식민지 침략을 해올지 모른다. 중국 역시 최근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서 보듯이 한국을 경제적•외교적•문화적 측면에서 그들의 통제 아래 놓아두려 한다. 미국은 한반도를 아시아 대륙 진출의 관문으로 생각하고 이 지역에서 패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러시아 역시 지금은 그들의 내치문제로 동북아 문제에 비교적 관심을 덜 가지는 듯 하지만, 내부가 단단해지면 그들도 패권주의적 성향을 보일 것이다.

이런 혼란스럽긴 하지만 매우 중차대한 시기에 처한 우리나라가 과연 무엇을 해야 이 난국을 슬기롭게 타개하고 나아가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이 모든 해답을 우리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해답이란 사회 모든 부문에서 국민총화를 다시 한번 이루어내어 밝은 미래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정치부문이 먼저 개혁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정쟁을 일삼는 작금의 사태를 과감히 떨치고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자신을 희생하는” 봉사정신과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덕성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다.

경제부문에서도 전시적인 경기부양정책을 실행할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며 기술 및 시설 투자 확대를 통한 산업활성화를 이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되살아나고 국민의 소득 수준이 향상된다.

사회•문화부문에서는 무엇보다 국민 화합을 이루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서로가 반목하고 갈등하고 있는 이상 궁극적인 국가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시민 스스로 화합에 적극 동참하고, 정부 차원에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특정 정파나 특정 계층에 집착하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계층, 모든 정파, 모든 세대를 포용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는 지금 우리 손에 의해 결정된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나라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을 가져야겠다. 그 때를 위해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개인과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되새기는 게 중요하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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