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시인
이 작두날 같은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 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 같은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삼겹살은 헛헛할 때 심신을 위로하거나 동료나 친구끼리 소주 한잔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삼겹살은 우리나라 음식 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사랑받는 식품이다. 그런데 나는 여름날 산중에 들어가 왜 삼겹살 같은 세상을 저 너머에 두고 왔다고 했을까. 삼겹살은 음식이 되기 전에는 근육과 비계와 피가 섞인 죽은 돼지의 차디찬 몸에 불과하다. 그 질기고 혐오할 만한 날것의 상징성을 나는 내가 사는 세상에 비유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성질이 못됐거나 질긴 사람을 개고기 같다고 한다. 사전적 풀이로는 개고기는 성질이 고약하게 검질기고 막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내가 삼겹살 대신 개고기 같은 세상을 두고 왔다고 했으면 시의 격이 떨어졌을까? 아니면 세상에 대한 모욕이 됐을까? 하여튼 더위를 이기는 서민의 보신 식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삼겹살을 쓸데없이 모독한 것 같아서 하는 변명이다.
어느 해 여름 두어 가족이 양양 미천골 휴양림에 간 적이 있었다. 꼭대기에 큰 절이 있어 쌀 씻는 뜨물이 계곡 아래까지 흐른다고 해서 미천골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전설 따라 휴양림에서 한참을 더 올라가면 고즈넉한 신라시대의 선림원 폐사지가 나온다. 절도 좋았겠지만 폐허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는 밤새 술을 마시다가 숲 속에서 잠들었다. 목덜미에 떨어지는 이슬의 섬뜩함으로 깨어났는데 새벽이었다. 피로와 함께 막연한 뉘우침 같은 게 잠깐 사이에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정화된 새벽의 깨끗함 같은 게 나를 관통해 간 느낌이었다. 그것은 과음한 아침에 느끼는 후회와 각성 같은 것일 수도 있었지만 물푸레나무 숲은 명료했고 새벽은 정결하고 단호하게 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새벽을 작두날에 비유했을 것이다.
다시 그런 새벽이 온다면 잠시 내가 산 너머에 두고 온 세상을 무엇에 비유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30여 년 저쪽이나 지금이나 죽은 돼지의 몸은 질기고 차갑지만 삼겹살은 맛있고 소주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