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56. 송덕봉(宋德峰)

입력 2017-07-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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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덕목 실천…시문집 ‘덕봉집’ 남겨

▲‘국역 덕봉집’. 조선대 고전연구원은 최근 덕봉의 시 25수를 국역하고 ‘미암집’과 ‘미암일기’에서 덕봉에 관한 사실을 발췌해 편찬했다.

송덕봉(宋德峰·1521∼1578)은 경사(經史)와 시문에 뛰어난 여성 문인으로 현재 ‘덕봉집(德峰集)’이라는 시문집을 남겼다. 여기에는 사대부가의 바람직한 여성상, 부부간의 애틋한 정, 가족애, 여성의 잠재적 욕망 등이 담긴 송덕봉의 한시 25수가 담겨 있다. 신사임당·허난설헌과 같은 시대를 살다간 그녀는 허난설헌과 개인적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송준(宋駿·1477∼1549)과 함안 이씨의 3남 2녀 중 막내인 송덕봉의 휘(諱)는 종개(鍾介), 자는 성중(成仲)이며, 호는 덕봉(德峰)이다.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게 휘와 자·호를 모두 가진 인물이다. 송덕봉은 조선 중기 대학자인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덕봉은 그녀가 태어난 전남 담양군 대곡면의 집 뒤에 위치한 산 이름이며, 현재 이곳에 이들 부부를 기리는 미암(眉巖)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그녀는 조선시대가 추구한 유교적 여성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으로서 배운 덕목을 일상의 삶에 진정성 있게 실천하고자 했던 실천적 지성인이었다. 남편의 ‘미암일기(眉巖日記)·1567∼1577’에 그녀의 행적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어 이러한 면모를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송덕봉은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라는 대중서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송덕봉은 시댁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을 강조하고, 남편이 친정 일에 좀 더 적극적이기를 요청하는 당찬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떠나 현대적인 여성의 전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송덕봉은 16세기 전통적인 생활방식 속에서 유교적 덕목을 몸소 실천해 나간 대표적인 여성이다. 남편이 유배된 상황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3년상을 홀로 치렀다. 이러한 모습은 18, 19세기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16세기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리학적 실천이 오히려 남편에게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송덕봉의 성리학적 사유의 모습은 외손녀 은우(恩遇)의 모습을 통해 확인된다. 송덕봉은 은우를 데리고 살면서 은우가 성리학적 이념의 수용에 충실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어린 은우는 남편의 사별로 재혼을 하게 된 얼이모(孼姨母)에게 “남편은 하나뿐이므로 두 명의 남편을 얻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송덕봉은 남편이 함경도 종성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취한 첩과의 소생인 딸 4명을 자신의 딸처럼 잘 다독여 가족 질서에 편입하고자 했다. 유희춘은 이런 모습에 감동하여 아내를 당나라 문종 때 효성으로 뛰어난 상곡부인(上谷夫人)과 같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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