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40. 문예봉(文藝峯)

입력 2017-06-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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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만의 연인, 친일•인민배우…영화보다 ‘극적인 삶’

문예봉(文藝峯·본명 문정원(文丁元))은 일제강점기 ‘삼천만의 연인’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여배우다. 191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문수일(文秀一)은 극단 연극시장(演劇市場)의 대표로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였다.

문예봉은 13세 무렵 배우 양성소에 들어가 수업을 받은 뒤 아버지가 이끌던 극단의 무대에 올랐다. 14세에 주연을 맡으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오똑한 코에 매끈한 얼굴’은 늘 화제가 되었고 문수일의 딸이라는 사실도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빼어난 외모가 소문이 나자 첩으로 삼겠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아버지 문수일은 딸을 첩으로 팔기 위해 그녀를 협박해 감금하기도 했다. 문예봉은 완강하게 저항해 위기를 모면했다.

문예봉은 1932년에 ‘임자 없는 나룻배’에 출연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그 이듬해에 조선연극사의 연구생이던 임선규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 임선규는 조선 신파극의 대표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의 원작자다.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문예봉은 1935년에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연기했다. 그 뒤 ‘춘풍’(1935), ‘미몽: 죽음의 자장가’(1936), ‘장화홍련전’(1936), ‘나그네’(1937) 등에 출연했다. ‘춘풍’과 ‘미몽’에서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신여성을 연기했다.

하지만 실제 문예봉은 신여성의 이미지와 달랐다. 평소에 머리를 길러 쪽머리를 했고 한복을 입고 다녔다. 폐병에 걸린 남편을 극진하게 보살핀다는 소식도 널리 알려졌다. 이규환 감독의 ‘나그네’에서 돈 벌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아내 역을 맡은 뒤로 ‘전통적 여인’의 이미지는 더 강해졌다. ‘나그네’의 향토적이고 민족주의적 색채는 이를 더 부추겼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전쟁 동원을 위한 국책 선전영화를 만들었다. 문예봉은 ‘군용열차’(1938)를 비롯해 ‘지원병’(1941), ‘조선해협’(1943) 등 대표적인 친일 영화에 출연했다. 남편 임선규도 친일 연극단체에 가담하고 지원병을 주제로 한 작품을 썼다.

문예봉과 임선규는 해방 후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좌익 단체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1948년 이후 월북했다. 문예봉은 ‘내 고향’(1949), ‘빨치산 처녀’(1954) 등에 출연했고 한국전쟁 중에는 문화선전 활동의 일환으로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1952년에 북한 최초로 ‘공훈배우’가 되었다. 1965년에는 나운규를 좋게 평가한 것이 문제가 되어 숙청당해 안주의 협동농장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 뒤 1980년대에 복권되었고, 1982년에는 ‘인민배우’의 칭호를 받았다. ‘삼천만의 연인’, ‘친일배우’, ‘인민배우’ 등 극적인 삶을 오간 문예봉은 1999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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