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파워엘리트] 임종석, 86그룹 대표 ‘운동권 스타’서 文정부 ‘실세’로

입력 2017-06-13 11:01수정 2017-06-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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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전성시대를 맞은 86그룹의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운동권 스타’였던 임 실장은 30여 년이 흐른 뒤 문재인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실세’로 거듭났다.

임 실장은 1966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1986년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했다. 3년 뒤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으로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그해 한국외대 학생이었던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평양 축전’ 방북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임 전 의원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제’에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취임과 동시에 지명수배자가 됐고, 현상금은 1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그는 10개월 동안 경찰을 따돌리면서 도피생활을 하며 10여 차례 기자회견을 하고 대학가 집회에도 참석해 ‘임길동’으로 불렸다. 경찰 역시 인정한 ‘오똑한 콧날’에 호남형 외모 때문에 여학생들이 수배 전단지를 몽땅 떼어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임 실장은 결국 경찰에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청년정보문화센터소장, 푸른정치 2000 공동대표 등 시민운동을 벌이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을 업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서울 성동구에서 이세기 한나라당 4선 의원을 꺾은 데다, 당시 만 34세로 16대 국회의원 중 최연소였다는 점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엔 한동안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고, 2004년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 대변인, 통합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등 당내 요직도 두루 거쳤다.

그러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부터 정치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원외 인사였던 임 실장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해 재기를 도왔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서 총선 출마의 뜻을 접어야 했다.

2년 뒤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보좌하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정치 무대에 돌아왔다. 1년 6개월 동안 박 시장과 함께 시정을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박원순맨’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그는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러브콜을 받고 문 후보 캠프로 합류, 비서실장을 맡아 일정과 메시지를 총괄하게 된다.

임 실장은 대선 승리 후에도 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만 51세의 젊은 정치인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은 건 이례적이다. 임 실장이 “성심껏 모시되 예스맨은 되지 않겠다”며 “투명하고 소통하는 비서실로 운영하겠다”고 일성한 만큼, 과거 정부와는 다른 청와대의 모습이 기대된다. 또 ‘젊은 청와대, 탈권위적 청와대’를 만드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요 약력

△전남 장흥 출생 △용문고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 △한양대 총학생회장 △서총련 2기 의장 △전대협 3기 의장 △16대, 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대변인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서울시 정무부시장 △2017년 문재인 후보 캠프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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