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몰려온 투기성 가수요가 진범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규제책이 발동 중인데도 별 효과가 없다.
주택시장 분위기가 노무현 정부시절의 형국을 닮아간다는 소리도 들린다. 도시재생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신규 공급이 줄어 앞으로 집값이 더 뛸 것이라고 한다.
사실 참여정부 내내 집값이 올랐다. 2006년 9~11월 사이에는 사상 유례없는 집값 급등세가 이어졌다. 주택 거래량도 통계 시작 이후 처음으로 100만 건을 넘었다.
동네 모임이나 직장에서는 폭등하는 집값이 주요 화제였다. 전 국민이 주택으로 돈을 벌려는 태세였다. 더욱이 전국 각지의 부자들은 서울 강남 아파트 투자에 열을 올렸다.
참여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수없는 대책을 내 놓았으나 상승세는 좀체 꺾이지 않았다. 규제책이 오히려 집값을 부추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시장은 정부가 지향하는 것과 반대쪽으로 흘러갔고 그래서 자꾸 더 강한 규제책을 내놓게 만들었다.
정권 말기에 급기야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동원해 집값을 잡았지만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참여정부가 집값을 잡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다(多)주택자에 대한 세금 강화와 대출 규제다.
대출금은 상환 능력에 따라 액수를 정하는 DTI 기준으로 환산하는가 하면 집 한 채에 대해서만 대출을 허용하고 나머지 주택의 대출금은 일정 기간 내 갚도록 했다.
게다가 6억원 이상 고가 주택은 재산세 외 별도의 종합부동산세를 물게 만들었다.
과도한 재건축 개발 이익에 대한 환수조치 기준을 만들었고 분양가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게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했다.
그야말로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가수요를 죽이기 위해 전 방위 압박 정책이 동원됐다.
참여정부의 규제책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나 둘 사라졌다. 위축된 주택경기를 살려야 한다며 부양책으로 바꿔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재개발 뉴타운 사업을 통해 개발붐을 일으켰으며 박근혜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 재건축 시장을 띄웠다. 더욱이 각종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면서 집을 사라고 독려했다.
그 결과로 지난 2년간 연간 80만 가구가 넘는 주택이 공급됐으며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도 참여정부 때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에 놀란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1월 수요를 줄이는 ‘11.3 대책’을 만들어 주택시장을 다소 진정시켜 놓았다.
그랬던 시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상승세로 치달았다.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5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69%로 전월(0.35%) 대비 거의 두배 가량 높아졌다.
참여정부 때처럼 전국의 투자자들이 서울의 인기 아파트를 사려고 몰려드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주택 거래가 늘어나면서 가계대출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달 대출 추정액은 6조원 규모로 4월 4조6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이 불어났다. 가계부채 규모는 1300조원을 웃돈다.
현 정부로서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주택시장을 그대로 뒀다가는 무슨 사달이 벌어질 것 같아서다.
그래서 항간에 수요 억제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여러 대책이 거론되지만 우선 대출 규제방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전 정부가 완화했던 DTI·LTV 기준을 높이고 전반적인 상환능력을 감안해 대출금을 정하는 DSR 적용도 검토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출 규제만으로 주택가격을 진정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세금을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GAP) 투자수요는 대출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대만 돼도 적은 자본으로도 집 구입이 가능하다. 전세금이 7억원인 서울 강남권의 10억원짜리 아파트라도 3억원 정도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돈 좀 있다는 사람 입장에서는 3억원은 별 거 아니다. 이런 수요가 전국에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사겠다고 덤비면 방도가 없다. 수량은 한정돼 있는데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확 풀어 공급을 대폭 늘리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층수제한이나 용적률 기준을 완화하면 지금보다 공급은 많이 늘어난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능사가 아니다. 도시가 망가지는 것은 차치하고 강남권과 같은 특정지역의 과밀화가 또 다른 사회문제로 등장한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잡히면 다행인데 개발붐에 편승해 가격은 더 오른다. 과거에 이미 봐 오지 않았던가.
주택은 공장에서 무한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어서 공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투기수요가 덤벼들 때는 공급은 별 힘을 못 쓴다.
게다가 문제는 집값 급등현상이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권에서 촉발된 급등세는 서울 전역으로 파급되고 이는 다시 수도권→지방으로 확산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동안 쭉 그래왔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투기성 가수요를 차단하지 않고는 날 뛰는 집값을 진정시킬 수 없다고.
그런데도 주택업계와 일부 대학교수는 최근의 주택가격 상승에 대해 서울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안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래서 일률적으로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주택업계 입장에서 보면 규제는 매우 못 마땅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애려고 한다.
이들은 규제를 없애기 위해 주택 관련 연구기관이나 대학교수를 동원하기도 하고 정치권을 통해 정부를 압박하기도 한다. 광고를 앞세워 여론몰이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신문지면에 이런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이는 칼럼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규제의 부당성을 피력하는 세미나 행사도 눈에 띈다.
앞으로 나올 규제 정책을 우려해 사전에 이를 차단하려는 관련 업계의 엄밀한 전략의 일환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현 정부는 이런 복잡 미묘한 시장구조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알고 정책을 수립해야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시장 안정화에는 수요억제책이 가장 효과적이다. 공급이 넘쳐나는데도 집값이 오를 때는 가수요 차단이 급선무다. 그동안 주택산업 발전과 공급 확대 명분으로 돈 많은 사람들의 임대주택 사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집을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공급이 늘어난다는 취지에서다. 맞는 말 같지만 자본이 주택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오히려 시장 안정화에 악 영향을 주는 측면도 적지 않다.
아무튼 요즘의 주택시장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은 매년 공공주택 17만 가구 공급 방안은 적절한 조치인 듯 싶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문제만 해결되면 민간 주택부문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전·월세 수요의 대부분은 무주택자여서 이들의 주거공간만 확실히 확보해 주면 민간주택 시장도 자연적으로 안정된다.
무슨 소리냐 하면 전·월세 수요가 줄어들 경우 임대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질 게고 그렇게 되면 주택을 대량 매입해 임대사업을 하려는 구매층 등이 감소해 민간주택 경기도 진정될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공공주택 공급물량이 적정 수준에 이르기까지 가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시장 안정화 효과가 제대로 작동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