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45년만에 ‘야당’ 깃발…대선 불출마 선언 후 문캠 공동선대위원장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구 출신의 4선 의원으로 ‘지역구도 극복’의 대명사로 불린다. 중진 의원의 무게감과 문재인 대통령 선거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약해 일찌감치 정권교체와 국민통합을 보여줄 수 있는 인사로 꼽혀 입각 가능성이 높게 거론돼왔다.
김 후보자는 195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 1977년 유신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또다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김 후보자는 1991년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뒤1991년 3당합당에 반대한 세력이 남은 ‘꼬마 민주당’에 입당했다. 1995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막내로 역할했다.
1997년 통추가 해체될 당시 한나라당으로 옮긴 후 2000년 군포에서 배지를 달았고 당내 소장 개혁파로 활동했다.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고 이후 17대, 18대 의원에 내리 당선됐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혀 TK(대구ㆍ경북) 출신으로는 40년 만에 첫 선출직 야권 지도부가 됐다. 19대 총선에서는 지역주의 타파, 경쟁의 정치를 기치로 내세우며 지역구인 경기 군포를 떠나 대구를 택했다. 대구 수성갑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이한구 후보와 맞붙어 고배를 마셨으나 39.9%라는 높은 득표율로 선전했다. 이후 보수의 심장이자 민주당 불모지 대구에 내리 깃발을 꽂으며 지역주의 타파에 힘쓴 의원이란 평가를 받는다.
2년 뒤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해 40.3%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역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고교·대학(경북고·서울대) 선배이자 운동권 선배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해 ‘3수’ 끝에 대구에서 4선 의원이 됐다. 소선거구로 치른 총선 기준으로 대구에서 정통 야당의원이 당선된 것은 1971년 이후 45년 만이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기세를 발판삼에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2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대구경북지역을 담당했으며 특히 대구에서 대선 유세를 하던 도중 일부 청중의 야유에 맞서 격정적으로 연설하는 영상으로 SNS상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