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철학은 ‘적자냐, 흑자냐’라는 양자 관계를 보겠다는 데에 있다. 명분은 불공정인데 손해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 시장을 잃지 않으려면 양국에 서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8일 세종국책연구단지 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가진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 대외 정책을 이같이 평가하면서 미국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주의는 철저한 ‘제로섬(zero-sum)’게임이 밑바탕 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중국이 미국으로 가져간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식 거래법이란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과의 지속적인 거래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현 원장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한국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면서도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한국은 통상 관계를 압박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등 대외적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대외정책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대외경제 연구를 총괄하는 현 원장에게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대외리스크와 위험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와 같이 간다. 경기 순환사이클 상 경제 성장률이 오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의 연구원들이 현재 미국 주가를 최고치로 꼽고 있다. 세계 경제가 몇 년 만에 살아나는 조짐은 보이고 있지만, 확실성을 두고 보자면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유가가 그렇다. 과거에는 유가가 낮으면 낮을수록 우리나라 입장에서 좋을 줄 알았지만, 작년, 재작년 유가 하락이 문제가 됐다. 올해는 유가가 어느 정도 안정단계로 진입하며 다시 살아났지만, 전문가들은 유가안정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로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한리스크가 있다. 중동과 러시아 문제도 대외리스크로 영향을 줄 것 같다. 유럽은 다행히 프랑스가 극단적 성향이 아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당선으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트럼프 정부는 보호무역 주의가 강한데 미국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지.
“일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이 불가하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핵심철학은 ‘적자냐, 흑자냐’는 양자관계만 본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세계무역기구(WTO),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함께 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명분은 불공정 거래를 바로 잡겠다는 것에 있지만 단순히 미국에 적자가 있다면 손보겠다는 의미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적자를 주는 국가다. 환율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관련해 6월 말까지 불공정 무역거래를 검토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180일 동안 FTA가 제대로 잘 되고 있는지와 철강 산업이 자국 안보 문제에 영향이 있는지도 포함됐다.”
△ 이와 같은 시나리오로 갈 때 예상되는 한국의 피해업종은.
“트럼프는 소위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역)에서 당선됐다. 이미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알루미늄 등에 공급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 때도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이 잘 안 됐는데 트럼프 정부로 들어서면서 정치적 기반이 더 취약해졌다. 현실적으로 FTA를 두고 정부 간에 고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철강 등의 산업은 별도의 채널로 빅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피해 업종은 서비스, 농산물 산업이다. 미국이 발표한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과 관련된 열 몇 개 항목이 대부분 서비스산업과 기술 수출 문제다. 예를 들면 법률 시장, 약값 문제 등이다. 보고서 내에는 농산물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개방 측면뿐만 아니라 제도 개선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FTA가 경제 강국보다 소수국가와 체결돼 있고, 현지에 한국 자동차 공장이 있어 한미FTA를 철회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는데.
“확실한 것은 한미FTA를 철회하면 미국이 손해를 본다. 미국 전문가들은 FTA를 통해 미국 기업이 자국 내 상장에서 이득을 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피터슨 연구에 따르면 2007년 맺은 FTA가 5년 늦게 발효돼 기회를 놓쳤다고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FTA를 철회하면 한국에서의 미국 경쟁력과 한중 FTA까지 상당히 손해를 안게 된다. 한국으로서도 FTA를 철회하면 일본에 미국 시장의 우위를 뺏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FTA가 양국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 고용 시장도 눈에 보이는 것만 3만7000명 정도다. 미국 수출도 한미FTA 이후 30% 늘었다. 한미FTA가 없었으면 미국 무역적자가 158억 늘었을 것을 것이란 보고서도 있다.”
△ 미국이 6월과 연말 두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에 미칠 영향은?
“금리 인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서 독립적으로 정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다른 신흥국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에 따라 중국 등 신흥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가 어떤 충격을 받을지 들여다봐야 한다.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신흥국인 중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은 자칫 잘못하면 돈이 다 빠져나갈 수 있다. 트럼프가 저금리를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정책방향과도 맞지 않다.”
△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이나.
“사드보복 분위기는 적어도 중국공산당 가을 당대회까지는 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사드에 민감한 이유는 내부 권력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 등 주석들이 10년간 집권한 뒤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집단지도체제를 이어 왔다. 집권 5년차에 후계자를 지명하고 그 후계자가 나머지 5년을 준비해 주석에 오르는 식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전 세계적인 추세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가 집권 5년차인데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 일환으로 대미 강경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에는 ‘상유정책 하유대책’이라는 말이 있다. 위에서 정책을 세우면 밑에서 대책을 세운다는 말인데 위의 정책을 잘 떠받는 대책이 아니라 위에서 만들면 피해 나가는 대책이다. 시진핑은 반부패까지 선언해 권력이 강화된 상태다.”
△ 중국의 사드보복이 한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나.
“사드 보복이 본질적으로 확산되면 중국이 손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중국의 제1위 수입국이다. 중국에서 한국 제품은 값도 싸고 기술력이 좋으며, 중국의 완제품은 한국의 부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 측면에도 한국 기업에는 직간접적으로 80만 가까운 중국인이 고용돼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 측에서 얘기할 수 있는 범위는 여행 관련 산업이다. 또 국민감정과 관련된 롯데 사례를 들 수 있겠다.”
△ 새 경제팀이 대외 정책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사드를 떠나서 중국도 서비스업 내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 서비스업 선진화 민관 공동위원장이었지만 해결 안 된 부분이 많았다. 국회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발의했는데 법만으로 부족하다. 현재 식음료 서비스에 자영업자들이 많은 이유는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70~80%의 진입장벽을 가진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60% 정도다. 이처럼 법률, 금융 등 모든 서비스산업에 규제나 진입 장벽을 철폐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 의식이 공익을 표면적으로 앞세우다 보니 규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일면에는 기득권추구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고쳐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이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제9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인 현정택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학 석사와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10회 출신으로 재정경제원 국제협력관과 대외경제국장을 거친 뒤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 대표부 경제공사를 책임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초대 여성부차관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과 박근혜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을 지냈으며, 2016년 6월부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