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남느냐 떠나느냐’ 중도 vs 극우 대결...다시 기로에 놓인 유럽 공동체

입력 2017-04-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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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미래를 결정지을 프랑스 대선이 중도와 극우의 대결로 좁혀졌다. 프랑스 대선 역사상 가장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23일(현지시간) 1차 투표 결과 중도와 극우 후보가 다음달 7일 있을 결선에 진출하게 됐다. 프랑스의 정치 시스템이 완비되고 나서 60년 역사상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한 두 후보가 모두 비제도권 정당 출신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 정치 지형의 대변혁이 예고된다.

▲결선 진출 소식이 알려진 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출처 = AP연합뉴스

비제도권 정당 출신이 1차 투표에서 상위 1, 2위 득표율을 기록한 건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결과다. 승기를 쥔 중도신당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는 모두 신생 정당에서 배출된 후보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득표율 1위를 차지한 마크롱은 30대 중반에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사임 직전 ‘앙 마르슈’라는 중도 신당을 창당했다. 하원에서 의석 수가 하나도 없는 신생정당 앙 마르슈를 이끌며 마크롱은 기세 좋게 선두를 차지했다. 특히 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 20일 파리 샹젤리제에서 테러가 있었음에도 마크롱이 안정적으로 결선에 오른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당시 언론들은 ‘테러 척결’을 강하게 주장하는 르펜 후보가 막판 표를 결집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 투표에 진출할 것이 확정되자 지지자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출처 = EPA연합뉴스

마크롱과 결선에서 붙는 르펜 후보는 FN을 창당한 장마리 르펜의 딸이다. FN을 물려받은 극우 핏줄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프랑스판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반 세계화, 보호무역주의, 반 이민을 주장해왔다. 르펜은 주요 공약으로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프렉시트(Frexit)’를 내세웠다. 따라서 르펜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시 유럽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다시 한번 균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NYT는 르펜의 결선 진출이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초로 EU 탈퇴 공약을 내놓은 후보이자 이슬람교도 여성들이 외출 시 히잡을 착용하는 문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뿌리뽑겠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르펜을 유권자들이 결선 투표에 올려놓은 것은 그의 정책을 더 보고 싶어 하는 유권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앞서 여러 조사에서는 르펜이 결선 투표에 진출해도 당선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나왔다. 극우 후보의 특성상 표 확장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1차 투표에서 좌절한 사회당의 베누아 하몽 후보는 이날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며 마크롱에게 표를 몰아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마크롱이 싸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여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작년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반전이 이번에도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여론조사는 결과적으로 정반대 예측을 내놔 ‘여론조사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EU로서는 프렉시트를 주장하는 르펜의 당선만은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EU 인사들은 마크롱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EU의 마르가리티스 시나스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마크롱 후보의 결선 진출에 축하를 보내며 결선 투표에서도 온 힘을 다하기를 기원했다”고 전했다.

‘르펜 대통령’이 탄생하면 당장 EU는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는 오는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개최되고, 7월에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린다. 프랑스의 극우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야 하는 EU 정상들은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모자라 유럽 한복판에서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면 금융 시장이 떠안는 정치 리스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금융 시장은 충격을 받게 되고 프랑스 국채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21일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이 당선되면 금융시장에 위험이 올 수 있다”면서 “이는 지정학적 위험보다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정책이 르펜의 공약과 맞물릴 때 세계적으로 균열 바람이 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극우당이 참패했으나 독일에서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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