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없는 것이 ‘있는’ 시대

입력 2017-04-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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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이 없는 시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없는 것이 곧 ‘있다’는 표현은 말장난 같기만 하다. 이른바 없어도 될 만한 것은 과감히 제거해 버리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 ROI) 좋은 제품이 사랑받고 있다는 흔한 의미다. 어쩌면 가치(value)의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의 차원일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와 이에 대비되듯 뭐 하나 마음이 놓이지 않는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남자에게 끌리는가? 답을 결정하기 위해 ‘고민’이라는 시간, ‘회상’이라는 시간이 단 10초라도 필요했다면 당신은 이미 ‘빈 듯한, 솔직한 가치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방증한다. 어쩌면 결혼은 완벽한 남자와, 돌봐주고 싶은 남자와는 뜨겁고 애틋한 사랑을 떠올렸을 수도 있으리라. 결혼이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것에 변함이 없다면 이제 이성(異性)의 가치 기준도 표면적인 완벽함 그 자체만은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서 ‘있어야 좋던 것이 없어지니(없으니) 더 좋다’는 현상도 나타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수준 높은 칭찬인 시대다. 식견이 좁을지언정 남까지 끌어들여 동정받을 모략을 펴지 않고, 자기만의 색(色)으로 당당하게 표현하는 정직함이 더 좋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한껏 ‘럭셔리’의 대명사로 불렸던 루이뷔통이 최근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슈프림(Supreme)을 자사의 남성 콜렉션에 등장시켰다. 이 현상에 대해 ‘럭셔리’ 브랜드가 시대의 조류와 타협하려는 시도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겠으나 사실이 어찌됐든 ‘완벽함’보다는 ‘차별성’, ‘럭셔리’보다는 ‘가성비’가 가치판단의 대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을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인 시대’라고 말하고, 베끼는 것도 큰 틀을 이해해야 비로소 ‘재창조’라는 그럴싸한 수식어가 붙듯이, 있어 보이려면 모르긴 몰라도 뼈를 깎는 아픔 정도는 필요하리라. 되지도 않는 식견에, 받쳐지지 않는 외모로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간다 한들 어색한 10%는 어쩔 수 없듯이 어쩌면 ‘마이너스(-) 10퍼센트(%)’를 자기 패션의 콘셉트로 가져가는 것이 훨씬 실익이 있는 스몰(small) 마케팅의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물론 문제도 있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다들 가성비를 보편화된 판단 기준이라고 말하면서도 가격은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전략으로 진입해 성공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누구라도 이를 주저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치 내 오장육부 중에 없어도 될 것을 찾아 떼어내는 것처럼 내 제품에 없어도 될 콘셉트 요소를 정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없는 것이 있어 보이는 시대에 끊임없는 인간의 욕심은 말해야 무엇할까마는 복잡함은 비웠는지, 가식적인 알량함은 거둬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 후에 ‘나’라면 순순히 지갑을 열 것인지만을 피드백해 보자.

소비자 눈높이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그만큼 불황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소비를 외치는 그들과의 리그에서 패하지 않으려거든 작은 틈도 없이 꼼꼼해야 한다. 어선의 음파 탐지기처럼 무수한 메시지를 시시각각 던져 보고, 이것 중에서 과연 어느 것에 가치를 보이는지 스몰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늘려 나가야 한다. 가성비를 맞추려거든 빼야 하고, 없어도 ‘있어 보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소비자가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식상할 수 있겠으나 그저 ‘더’ 부지런하면 될 일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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