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113명이 최근 ‘삼성 불법행위 진상 규명과 특검법 제정을 촉구하는 경제학자 일동’ 명의의 성명에서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국가 기관에 대한 로비 공작은 삼성 계열사의 경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익 추구를 위한 것”이라며 “삼성이 투명 경영을 실현해 ‘국민 기업’, ‘시민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삼성과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라고 밝히고 나섰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미래에 관한 긍.부정론이 치열하게 엇갈리고 있는 국가적 과도기 상황에서 나오고 있는 결코 예사로운 움직임이 아니다. 사실 우리 경제는 최근들어 한측면에서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는 측면도 부인할 순 없다. 그동안 수출은 외풍에 흔들릴 때도, 소비•투자가 주춤거릴 때도 꿋꿋하게 성장의 버팀목이 돼왔다. 연말까지 예상되는 수출 3670억달러, 수입 3520억달러를 합해 올해 무역 규모는 7190억달러, 홍콩을 제치고 세계 11번째로 7000억달러시대를 연다. 순위가 앞선 네덜란드•벨기에가 중계무역국임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세계 무역10강의 일원이다. 5년 연속 두자리의 수출증가율, 10년 연속 무역흑자 기록 또한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글로벌화 시대를 향한 큰 전환점에서 짙은 어둠들이 곳곳에 내재되어 있음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점이 도사린다. 무엇보다 장기적 국가경쟁력이란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는 경쟁력의 실질적인 기초인 과학기술의 위상이 추락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더 크게는 경제활동의 주체인 기업경영이 구시대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나라운영을 짊어지고 가야할 공직사회, 그리고 '정치의 그림자'가 아직도 구시대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 대목으로 부각되고 있다. 곳곳에서 국가사회 구조적인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기초과학 분야부터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6년 전 세계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의 ‘과학적 응용력’ 분야에서 한국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000년 과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2003년 4위에 이어 2006년에는 11위로 추락했다.
이런 전환점에서 특히 최근 확대일로에 있는 '삼성사태'는 한국기업의 내부체질이 과연 어디쯤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지금 까지 알려진 삼성의 문제점은 가위 전방위적이어서 ‘삼성물산의 해외 비자금 2000억원대, 그 비자금으로 사들였다는 600억원대 해외 미술품, 삼성 각 계열사의 7조원대 분식회계, 이건희 회장 재산 차명은닉, 삼성상용차 분식회계 법원서류 불법폐기’ 등에 이른다. 또한 중앙일보 위장 계열 분리,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 매수 의혹, 김&장 법률사무소•삼일회계법인 등과의 유착 의혹등까지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그 뿐 아니다. 사태는 일파만파의 연속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돈인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도 지난 2003년 검찰 수사를 받을 때 15억 원을 로비자금으로 건넨 것으로 확인이 됐다는 것이고, 삼성그룹은 현행 금산법 때문에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삼성증권의 '그룹 자금흐름과 비자금 조성 통로' 가능성까지 다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검찰이 삼성증권을 첫 압수수색 대상으로 택한 것도 삼성증권이 비자금의 통로로 활용됐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삼성증권을 통해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팔거나 총수 일가와 그룹 임원들 개인 이름으로 안전하게 주식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게 수사당국의 주장이다.
노대통령의 임기말을 맞아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무책임'에 가까운 자세도 크게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으로 보인다. 현직 국세청장이 사상 처음으로 피내사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현직 국세청장의 검찰 소환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생긴 것이다. 국세청장은 국세행정의 최고 집행기관이고,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현상은 변양균 - 신정아 사건에 이어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 사건의 연장선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와 청와대 인사 시스템 미비로 임기 말 노무현 정권의 모럴 해저드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물론 어느 정권에서나 ‘부적절한 권력이 행사되는’ 스캔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과거 정권에도 대통령 자신이나 측근이 연루된 비리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대응 방법이 과거 정권과 달라서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는 양상이다. 변 전 실장의 비호 의혹과 청와대 의전비서관인 정윤재 게이트가 불거지던 지난 9월 노 대통령은 진실 확인보다는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며 덮기에 급급한 듯한 인상을 준 것만 봐도 그렇다.
여기에다 여러가지 경제비리 현안들을 감독해야할 기관들에서 부터 구멍이 뚫려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홍콩에 진출한 국내 금융기관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의 금융감독체계는 큰 변화를 겪어서, 위기 이전 당시 재정경제원에 집중돼 있던 권한은 한국은행(통화당국)과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감독당국) 예금보험공사 등으로 분산됐고 규제도 개선됐다고 하지만, 홍콩은행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은행을 중심으로 한국 금융회사들이 선진국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정책 결정이나 감독체계가 완전히 정비되기에는 갈길 이 멀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는 보도들이다.
곳곳서 드러나는 후진형 국가사회 타성
한마디로 '투명경영'을 정확하게 감시 감독해야 할 공직기능(公職機能)의 이완현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의 음습한 그늘은 중앙• 지방정부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승진을 위해 단체장 등에게 돈을 건네는 예가 비일비재하다는 주장까지 노조단체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정년이 57세인 6급 공무원이 정년 60세인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다면 1년치 급여 등을 다 건네도 손해볼 것 없다며 매관매직(賣官賣職)을 정찰제(正札制)로 굳혀왔다는 것이다. 행정직은 5000만원, 기술직은 1억5000만원이라는 게 노동단체의 ‘증언’이다. 그러잖아도 숱한 단체장들이 검은돈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아왔다. 나아가, 지방공무원 6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빌리면 49%가 “승진에 돈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니, 지방공직의 근 절반이 그렇게 썩어 있다는 의심도 부자연스럽 않을 정도다. 그런 비리 단체장, 그같은 비리 공무원들이 주민을 위해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해왔을까 하는 개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화 시대, 국가사회의 선진화 발목을 잡는 '함정'은 이렇게 곳곳에 늘려있는 셈이다.
이런 부패구조의 확대재생산은 정말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5000만원, 혹은 1억5000만원을 ‘승진 뇌물’로 갖다바친 공직자가 어디서 벌충할 것인가. 또 다른, 더 큰 부패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그들의 ‘승진’을 지켜보는 동료 공무원을 부패의 늪으로 이끌 것이라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폐단인 것이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인사청탁과 뇌물거래는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감사로는 적발하기 어렵다”고 하고 있으니 역시 그 지방정부에 그 중앙정부라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해방 이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고 그 때마다 공무원사회 개혁과 부패 추방을 부르짖었어도 허구한 날 그 모양 그 꼴이란 비판론이 비등한 체질을 갖고, 어떻게 그 치열한 시장경제 위주의 세계화, 글로벌화의 정면경쟁에 나서서 국가를 도약시키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대책이 서질 않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마디로 매관매직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뇌물로 승진한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할 리 만무하고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만 도태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을 뿐인 것이다.
심지어 국가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본업으로 지켜야 할 언론조차도 우리 국가사회 구습을 비켜나질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신문발전위원회는 전국 일간지 137개 신문사로부터 2005 회계연도 경영자료를 넘겨받아 △구독수입 △광고수입 △자본내역 및 주주현황을 1년 5개월 동안 검증한 뒤 지난 최근 공개했다. 신문발전위는 지난해 5월부터 2005 회계연도 자료를 받아 한국에이비시(ABC)협회와 회계법인 등 검증기관에 위탁해 7월까지 검증을 마쳤다. 그렇지만, 신문사의 자료 공개 가운데 발행부수와 유가부수와 같은 민감한 사항은 중앙일간지 대부분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C•J•D일보등 국내 유수의 신문사들은 아예 구독•광고수입 자료도 불성실하게 신고했거나 검증하기 힘든 자료를 냈다고 신문발전위는 분석했다. 결국 이 언론분야에서도 성실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경영 투명성의 취지가 제대로 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버린 것이다. 이래갖고 무슨 선진국으로 도약을 하겠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정치권과 언론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돼가고 있는 것인가. 역시 감시감독을 제대로 해야할 지도층의 문제로 좁혀진다. 현재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위해 여념이 없는 정치권부터 한번 보자. 선거전 초반부터 상대당에 대한 고소•고발로 얼룩이 지면서 과열양상을 빚고 있다. 국민 일반적 시각에서 본다면 정작 국민생활에 필요한 정책논쟁 실종되고 정치공방만 춤추는 대선정국으로 흐르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의 대선전(大選戰)을 요약하면. 후보 간 도덕성 문제를 둘러싼 정치 공방의 첨예화•극대화, 그로 인한 정책 논쟁의 실종에 이어 후보 난립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는 형국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의혹 사건,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번복 출마, 여전히 여진이 계속중인 범여권 후보 단일화 논란 등으로 이번 대선은 정치 공방만 춤출 뿐, 정책 논쟁은 사실상 실종 되다시피 하고 있다. 선거전 구도가 이렇게 흘러가다보면 앞으로 공식 선거운동 기간도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대안 대결보다는 ‘차선의 인물 고르기’라는 후진국형 선거 행태로 시종할 개연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심지어 국가 사회전체의 투명화와 건강성에 대한 감독 감시를 본업으로 해야 할 언론조차도 우리 국가사회 구습에서 비켜나질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신문발전위원회는 전국 일간지 137개 신문사로부터 2005 회계연도 경영자료를 넘겨받아 △구독수입 △광고수입 △자본내역 및 주주현황을 1년 5개월 동안 검증한 뒤 지난 최근 공개했다. 신문발전위는 지난해 5월부터 2005 회계연도 자료를 받아 한국에이비시(ABC)협회와 회계법인 등 검증기관에 위탁해 7월까지 검증을 마쳤다. 그렇지만, 신문사의 자료 공개 가운데 발행부수와 유가부수와 같은 민감한 사항은 중앙일간지 대부분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C• J• D일보등 국내 유수의 신문사들은 구독•광고수입 자료도 불성실하게 신고했거나 검증하기 힘든 자료를 냈다고 신문발전위는 분석하고 있다. 결국 '사회의 감시자와 목탁'이 돼야 할 언론분야에서도 성실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경영 투명성의 취지가 제대로 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 지고 있는 것이다. 이래갖고 무슨 선진국으로 도약을 하겠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어떻게 달려온 대한민국인가. 국가의 미래를 향한 '희망의 단서'를 찾아내야만 한다. 핵심분야는 역시 '경제'이고, 실질주체는 '기업'일 수 밖에 없다. 성공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현대차 그룹 출범 당시만 해도 현대•기아차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외환위기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기아차의 정상화는 요원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전문화, 선택과 집중에 주력한 현대차 그룹은 자동차 관련 수직 계열화에 성공, 시너지를 극대화했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지난 1997년 순이익이 464억원에 불과했던 현대차는 2006년 1조5261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현대차의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390%에서 64.7%까지 줄었다. 그 이유로서는 지난 9월 현대자동차 노사가 1997년 이후 10년 만에 임단협 ‘무파업 타결’에 성공함으로써 현대차가 ‘글로벌 톱3’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주요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전체와 삼성의 글로벌화 개혁 중요
최근 위기에 처한 삼성에도 다시 재도약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최근 취임한 20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을 맞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회장이나 삼성은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삼성은 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포 후 세계 기업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기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지난 40년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본 전자산업을 제쳤다. 국내총생산(GDP) 중 2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대표 기업이 됐다. 아직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1조 원가량으로 국내 기업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고, 삼성은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 한국 총수출의 5분의 1을 커버하는 대한민국 리드 기업이다.
이제 삼성은 이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커다란 시험대이자 새로운 도약대 위에 다시 섰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시대적인 전환기를 알리는 큰 종이 이미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성뿐 아니라 검찰•국세청, 그리고 현재 대선정국에서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권력집단들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차례차례 비리가 노출, 모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상이다. 따라서 삼성의 경영 투명성도 어차피 우리 국가사회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국내 모든 분야가 아직도 세계화, 글로벌화, 선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질과 능력을 제대로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삼성 때리기’에 만 그치면 곤란한 것도 그 이유다.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머지않아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다. 개별 기업과 문제를 안고 있는 유관 기관들에는 시련이겠지만 일단 타이밍은 절묘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번 기회에 썩은 부위를 국제적 수준에 상응하게 합당하게 도려내고 투명경영을 선진형 본궤도에 오르게만 해 나갈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건강한 선진 조국 재건설을 위한 일대 전기를 맞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건 대한민국에도 큰 행운이 될 것이다. '재성장'을 통해 최대의 민생과제인 '양극화의 아픔'도 한발 한발 선진형 치유책으로 해결해 나가는 '국민통합'과 '제2단계 도약기'를 맞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이 중요한 시기, 각계 각층의 단호한 분발을 촉구한다.
이타임즈 이병도 주간 [bdlee@e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