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패트리어트 데이, 애국에 대하여

입력 2017-04-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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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가 웬만해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주제가 바로 ‘애국(愛國)’이다. 애국주의, 즉 국가·사회정의·선(善)·도덕, 뭐 그런 것들을 앞에 내세우면 영화는 폭삭 망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무 대놓고 거대담론을 앞세우는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치를 떨기까지 한다. 모두 박정희 시대 40년(박근혜 시대까지 합쳐서)이 만들어 낸 ‘병든’ 유산이다.

영화계는, 영화인들은, 좌파나 공산주의자라서가 아니라(그 얘기라면 어쩌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리다.) 순전히 상업적인 계산 때문에, 곧 ‘장사가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위의 주제들을 내세우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그것들 중에도 예외는 있다. 박근혜 시대 때 만들어진 ‘국제시장’이나 ‘인천상륙작전’ 같은 경우는 대규모 흥행몰이를 했다. 그건 이들 영화가 ‘웰 메이드(well-made)’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짜면서까지 비교적 강압적인 분위기로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라고 영화계를 내몬 것에 비하면, 그나마 감독들이 뛰어나고 똑똑한 덕에 작품만큼은 잘 만들어 낸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이산가족찾기 장면 같은 것을 보라. 아무리 이를 악물고 참으려 한들 그 장면에서 울지 않은 관객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런 점에 관객들이 호응한 것이다. 박정희 - 박근혜식 애국주의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연평해전’ 같은 경우 박근혜 정부가 흥행을 인위적으로 만든 ‘감(感)’이 없지 않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들 작품 모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 관객들에게서 ‘국뽕영화(쇼비니즘적 색채를 지닌 영화를 가리키는 신조어, 은어)’라는 지탄 아닌 지탄을 받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앞선 세 편의 영화와 달리 지난주에 개봉된 ‘패트리어트 데이’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 탓에 일부 관객들로부터 철저하게 오해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 ‘패트리어트 =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아예 박혀 있어서인지 내용과 상관없이 개봉 전부터 ‘국뽕’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사에서는 그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세상이다. 거기에 대고 ‘애국의 날’이라니. 극장가를 주도하는 20 ~ 30대 관객층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을 수 있다.

‘패트리어트 데이’는 1775년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처음으로 벌인 독립전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첫 교전지가 바로 지금의 보스턴 렉싱턴 거리인데, 이 코스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이다. 매년 4월 셋째 주중에 열린다. 첫 행사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년 전인 1897년 열렸다. 지금은 미 - 영 전쟁 정도는 싹 잊혔을 만큼 마라톤 대회 자체의 인기가 높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제 대회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바로 2013년 이날 벌어진 테러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 ‘패트리어트 데이’이다.

‘패트리어트 데이’를 보고 있으면 선입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가 보스턴 테러 사건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는 점도 깊이 인식하게 만든다. 애국이나 정의라고 하는 것이 추상의 수사학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의 행동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한 줌의 극단주의자들, 그들의 밑도 끝도 없는 극한의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얼마나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는가를 가르쳐 준다. 세상이 상식적으로 작동할 때 사람들이 비로소 서로를 포용하고, 소통하며, 연대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패트리어트 데이’는 어쩌면 ‘세월호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 북한의 미사일과 미국 대통령의 오만불손(傲慢不遜)함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군사적 긴장의 위험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그것도 구체적인 언어로. 마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느낌처럼.

스포일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모습은 단 두어 컷의 짧은 장면에 담겨 있다. 테러로 희생돼 거리에 방치된 아이의 시신 옆에서 구급차가 오기까지 거의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한 무명의 경찰관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죽은 아이가 그나마 외롭지 않았겠구나’ 하는 마음에서 안도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온다. 영웅은 저런 사람이며, 바야흐로 애국은 저런 것이다. ‘사회 정의를 지킨다는 것, 국민을 위한다는 것, 공복(公僕)의 자세라는 것은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재삼, 거듭해서 느끼게 된다.

확언하건대 ‘패트리어트 데이’의 이 장면은 2017년에 나올 영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장면의 하나로 꼽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애국하고 있는가. 당신에게 애국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애국을 하려 하는가. 요즘처럼 ‘애국’이란 단어가 모호해진 시대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 탓인가. 그 의미를 되살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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