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87. 신라 명원부인(命元夫人)

입력 2017-04-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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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죽음을 복수로 갚은 흘해왕의 母

명원부인은 신라 제11대 왕인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의 딸이다. 어머니는 10대 내해(奈解)이사금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 남편은 각간(角干)을 지낸 석우로(昔于老)인데, 내해이사금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 아이혜 부인과는 남매간이므로 촌수로 외삼촌이 된다. 신라에서 왕실 여성들은 대부분 근친혼을 하였는데, 왕녀인 명원부인 역시 왕실 전통에 따라 외삼촌과 혼인을 한 것이다. 여자형제로 미추(味鄒)이사금과 혼인을 한 광명부인이 있다.

남편 석우로는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각간으로 승진하여 군사 업무를 총괄하였다. 우로는 전쟁터에서 손수 불을 피워 부하들을 위로하여 존경을 받았으며,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난을 진압하고 감문국(甘文國)을 정벌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12대 점해(沾解)이사금 시기에 왜국 사신 갈나고(葛那古)를 접대하는 자리에서 “너희 나라 왕을 소금 굽는 노비로 삼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희롱하였다. 이것이 일본과 외교문제를 일으켰다. 왜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신라를 침입한 것이다. 조분이사금까지 전쟁에 나설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때 우로는 자신의 말로 일어난 일이니 사과를 하겠다며 왜군의 진영에 갔다. 그러나 왜군은 우로를 붙잡아 불태워 죽였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게 된 명원부인은 복수를 다짐했다. 몇 년이 지난 뒤 13대 미추이사금 때에 왜국에서 사신이 왔다. 명원부인은 미추이사금에게 나아가 자신이 왜국 사신을 접대하겠다고 청하였다. 왕이 허락하자 명원부인은 사신을 집으로 초대하여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명원부인의 접대에 기분이 좋아진 왜국 사신은 술을 마시고 몹시 취했다. 이때 명원부인은 힘이 센 장사를 시켜 왜국 사신을 뒤뜰로 끌고 가게 했다. 그러고는 왜인이 남편에 했던 것과 같이 사신을 불태워 죽였다. 이 일로 왜군이 다시 신라의 수도인 금성(金城)을 침공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우로가 죽임을 당할 당시 아들인 흘해(訖解)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명원부인은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이 아들을 키웠다. 흘해는 어려서부터 노련하고 성숙함과 덕이 있다는 평판을 받았다. 15대 기림(基臨)이사금이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군신들은 명원부인의 아들 흘해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 아들이 즉위하여 신라 제16대 흘해이사금이 된 것이다. 이로써 명원부인은 왕의 어머니가 되었다.

명원부인은 신라에서 왕의 딸로 태어나 각간이라는 최고위직의 부인으로 호화로운 환경을 가졌지만 남편이 살해되는 충격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면서 살지 않았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하였으며, 또한 당시 어렸던 아들의 교육에도 힘써 뒷날 적법한 왕위 계승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들이 신하들에 의해 추대되어 왕이 되게 하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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