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기공 김교술·김태성 부자
“먹고 살려고 배운 기술이지만 50년 동안 하다 보니 거래처가 많아졌죠. 이것도 내 세대에서 끝나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들이 한번 해보겠다 하니 굉장히 반갑고 고마웠어요.”
24일 서울 문래동에 위치한 자신의 공업사 ‘태성기공’ 앞에서 만난 김교술 씨(63)는 옆에 앉은 아들 김태성 씨(29)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아들도 웃었다. 두 얼굴이 판박이였다. 한때 비보이였던 아들은 아버지가 한 평생 기술을 쌓아온 기계금속 가공업계에 들어와 만 4년째 기술을 익히는 중이다.
아버지 김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1960년대 후반에 업계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부품 깎는 일을 배울 때는 선배들한테 큰 드라이버로 맞거나 기합을 받으면서 배웠죠. 지금 그렇게 가르치면 누가 하겠어요.” 그가 돌이켰다. 아버지 세대가 ‘몸’으로 배웠다면 아들 세대는 ‘글’로 기계를 익혔다. 2013년 여름께 아버지의 작업장에 합류한 태성씨는 책을 보고 알음알음 기술을 배워 나갔다고 했다. “지금 웬만한 건 다 하는데, 정말 어려운 건 아직 아버지한테 배워요.” 태성씨가 말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내편이 됐지만 태성씨와 아버지 사이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춤을 배워서 대학도 서울예대 무용과에 진학할 정도로 춤에 푹 빠져있던 비보이 태성씨였다. 그는 “춤을 추다가 아버지와 싸운 적도 많다”며 “지금도 춤이 그립긴 한데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이젠 아쉬워할 시간도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아버지는 큰 결정을 한 아들을 위해 신식 기계를 장만해줬다. “예전에 제가 썼던 기계는 반자동인 캠식 선반이었죠. 이제 아들이 쓰는 선반은 컴퓨터식 자동 선반입니다. 공정도 80% 정도 자동화가 이뤄져 초기 설정만 하면 사람이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되니 일이 쉬워진 편이죠.” 김 씨가 설명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까지 10시간 이상 작업장에서 어깨를 비비며 일한다. 소형 전자 기계에 내장되는 부품, 의료기계 부품 등을 갈고 깎아낸다. 납기일이 촉박하면 저녁 10시까지 잔업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납기일 맞추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열흘이나 보름 정도 시간을 주지만 그날 와서 해달라는 분들이 있거든요.” 태성씨가 토로했다. 하지만 일감이 끊기지 않고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가 어려운 것 같다. 문 닫는 곳이 많이 보인다”며 “대량생산 건은 중국으로 많이 넘어가고 국내서는 샘플 제작 위주로 이뤄지는 편”이라고 했다. 김 씨는 “지금 공장이 한 군데 더 있는데, 앞으로도 무리 안하고 이 정도 선에서 조금만 더 유지를 하면 좋겠다”며 “정부에서도 지원을 늘린다고 하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400여 곳의 기계·금속 공업사가 집적된 문래동 일대에는 10여년 전부터 1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에 접어들며 아들이 가업을 승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윤정호 문래동 소공인특화지원센터장은 “센터에서 경영 교육을 하는데 학생의 5%는 2세들이다. 전체적으로도 그쯤으로 추산된다”며 “특히 최근에는 업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율이 더 심각하다보니 자연스레 2세들이 아버지가 쌓아온 기술과 일감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