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창의적 인재 키우는 교육제도 만들어야 ‘혁신’의 길 열린다

입력 2017-03-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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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새 정부에 대한 지지 첫번째 잣대는 ‘일자리’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노비즈협회장을 맡게 된 성명기 회장은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교육 제도를 바꿔야 하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이어질 것”이라며 변화를 촉구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지금의 청년들은 전체의 절반가량이 공무원을 준비할 정도로 안정적인 직업을 준비한다. 이에 반해 새로운 도전은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창조경제에 적합한 인물이 나올 수 없다.”

지난달 이노비즈협회 8대 협회장에 재취임한 성명기 회장은 23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창조경제는 교육제도의 이노베이션(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노비즈협회는 2002년 설립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대표 단체로 1만2400 회원사가 소속돼 있다. 성 회장은 “창조경제를 설명할 때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에디슨 등을 거론한다”며 “현재의 교육 제도는 학생들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대기업 일자리는 4만6000개가 줄었지만, 이노비즈 일자리는 3만5000개 이상이 늘었다”며 “앞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지 못 받는지의 첫 번째 잣대는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린시절 무전기 만드는 데 푹 빠져

그는 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라디오 무전기를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업 시간에도 책상 밑에 전자회로 책을 숨겨놓고 보다가 혼나기 일쑤였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성적은 엉망이었다. 학교 다닐 때 꼴찌를 밥 먹듯이 하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3차 모집 때 겨우 진학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성적은 변함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파상 주인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디오를 다락방으로 올려 두고 1년 동안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예비고사를 먼저 통과해야 했었다. 예비고사는 대학교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지, 그 점수로 대학을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영어 점수가 10점이라도, 수학 점수가 90점이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 회장은 그렇게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당시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차별화(差別化)를 하여 좋았는데, 지금은 변별력이 전혀 없다”며 “어떤 분야에 대해 특별한 호기심을 갖고 몰입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창조경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회적으로는 이것저것 잘하는 사람보다는 어떠한 부분에 특출 나고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 회장은 코끼리를 예로 들었다.

“어린 코끼리의 발을 끈으로 묶어 놓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상태에서 자란 큰 코끼리의 발을 끈으로 다시 묶어 두면 똑같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큰 코끼리는 힘을 주면 끈이 풀릴 테지만 어릴 때의 경험이 남아 있기 때문에 끊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도전하지 않던 학생들이 자라서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성 회장은 국내 교육 상황을 독일과 비교했는데, 베를린 인근에 있는 중소기업 첨단기술 단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곳에는 아인슈타인이 졸업한 대학의 분교가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바로 직장에 취업하는 독일 학생들은 일과가 끝난 뒤 분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대학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대학 학위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업체 강당이나 공단 관리본부 강당에서 계약 강의를 듣는데, 과연 직원들이 독일처럼 자부심을 느끼고 공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성 회장은 성토했다.

성 회장은 “한국에서 벤처기업을 하려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외국에서는 대부분 지역에서 벤처가 발달돼 있으며 아이디어만 있으면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통일이 되면서 중소기업에 임대료 등을 저렴하게 해줘 활성화(活性化)가 잘됐다”며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통일돼 강원도 철원 같은 지역에 중소기업을 위한 공단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직장 다니며 대학 학위받는 독일처럼

성명기 회장은 중소기업에 일자리 창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펼쳐왔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해외 순방 당시 동행한 성 회장은 조찬간담회 때 중소기업의 실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당시 성 회장은 중소기업 기술 지원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다. 그는 “스타트업으로 창업해 기술을 갖고 성장한 매출 150억 원가량의 기업이 있다. 이 기업들의 CEO들은 기술로 창업했다가 경영으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 공백을 메울 수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엔지니어들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출연연구소에서 인력을 확충한 뒤 이 인력들을 중소기업이 요청하는 기술직에 배치해 달라”고 건의했다.

박 전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2013년 8월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1379 프로그램)’의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성명기 회장이 미국에 갔을 때 대통령께 건의한 내용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연구 인력 지원이 중요하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다.

성 회장은 일자리 창출이 안 되면 극심한 빈부 격차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말미암아 분노하기 시작한다”며 “사회적인 불안감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에 반기를 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에 정부가 지원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연구개발지 지원 등을 해도 기초기술을 가진 것은 이노비즈 기업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대기업에서 줄어든 일자리를 중소기업이 흡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근로시간 단축, 중기 현실엔 안 맞아

최근 이슈가 된 ‘근로시간 52시간’으로의 단축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이 우선이라는 전제를 뒀다. 그는 “대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상황이 허다한 상황에서 근무시간 단축은 기술개발을 막는 일”이라며 “양질의 인력은 필요한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근무시간이 줄어도 기술개발을 진행할 수 있지만, 인력이 한정된 중소기업에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에서는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하려면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국가 지도자들이 중소기업에 지원해야 하는 논리를 설득하고 대기업을 위한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은 인생의 행복이며 삶의 원동력

성 회장은 자신이 경영하는 여의시스템이 이노비즈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어려웠던 가족사를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힘줘 말했다.

“1984년 감기인 줄 알았던 두 살배기 큰아들이 일주일째 고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다니던 소아과에서 연락이 왔다. 큰 병원으로 옮겨 진찰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그 즉시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내려진 판정은 백혈병. 이 충격으로 임신 6개월째였던 아내는 둘째를 유산하게 됐다. 한 달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큰아들은 기적적으로 퇴원 판정을 받았다. 당시에는 희망에 찬 얼굴로 병원을 더는 찾을 일은 없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두 살배기 어린 아이에게 백혈병은 가혹했다.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생사의 갈림길까지 갔던 큰아들. 잦은 항암 치료와 피검사 등을 견뎌낸 아들은 같은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퇴원 결정을 받고 일상적인 치료로 전환했다. 이듬해인 1985년 아내가 폐결핵에 걸렸다. 큰아들의 병간호를 하면서 잘 먹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병원을 오가며 간호한 탓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심지어 유산 후 둘째를 다시 임신한 와중이었다. 6월에 태어난 둘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모유도 먹이지 못하고 아내와 격리해야 했다. 대학 산악부 선후배로 만나 결혼한 우리 부부는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질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시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986년 내시경 검사를 한 나는 위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잘 치료한 끝에 위암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들의 백혈병과 아내의 유산·폐결핵, 그리고 자신의 위암. 이 모든 질병을 앓았다가 이겨낸 성명기 회장의 가족은 인생의 행복과 함께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귀띔했다.

성 회장은 “평범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저녁에 침대에 누워 스르르 잠드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 자체가 가슴에 와닿으면 인생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명기 회장은

1980년 2월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3년 여의마이컴을 창업했다. 이후 1991년 10월 여의시스템으로 이름을 변경해 지금까지 경영해 오고 있다. 자신의 삶을 담은 이야기인 ‘도전’(2008년)과 ‘열정’(2014)을 출간했으며, 2013년에는 제6대 이노비즈협회장을 지냈다. 재단법인 아셈중소기업친환경혁신센터 이사장, 평화통일자문회의 중앙 취업지원단장 등을 거쳤으며, 현재 제8대 이노비즈협회장 자리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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