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환경에 맞게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자연의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을 보면 경이로울 때가 많다. 다양한 환경 변화에서도 살아남는 그들의 생존력은 늘 연구 대상이다.
자동차의 진화도 이러한 생물들의 적응력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소비자들의 변화되는 기호에 맞게 진화하면서 경쟁력을 갖추는 모습은 생물의 그것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쌍용자동차가 최근 내놓은 렉스턴Ⅱ 유로는 그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렉스턴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120마력을 얹은 디젤 엔진은 무쏘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기존 SUV와 달리 호화로운 장비로 무장한 렉스턴은 단숨에 오너들을 사로잡아 현대 갤로퍼와 테라칸을 타던 오너들까지 흡수했다.
그러나 현대차가 어떤 기업인가? 해외에서는 때론 실패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만큼은 얄미우리만큼 치밀한 계산 하에 움직이는 기업 아니던가. 한동안 렉스턴의 행보에 주춤하던 현대는 싼타페와 투싼, 베라크루즈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시장의 흐름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려놓았다.
현재 시장의 추세는 대형 SUV보다는 중소형 SUV가 각광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SUV 시장을 소홀히 볼 수 없는 것은, 저가의 중소형 SUV보다 이익이 많이 남는 데다 메이커의 이미지 리딩 모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렉스턴Ⅱ 유로의 등장은 매우 시기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차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던 렉스턴Ⅱ와 달리 새로운 엔진이 변화의 핵심이다. 달라진 배기가스 규제에 대응하면서 환경개선 부담금 면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저공해 엔진을 새로 얹고 있다. 출력은 기존의 191마력에서 186마력으로 줄었다. CDPF(Catalyzed Diesel Particulate Filter)라고 명명한 필터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 필터는 디젤차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미세먼지(PM)를 고온에서 태워버리기 때문에 공해물질 감소에 큰 효과를 나타낸다. 그 덕에 5년간 91만원에 이르는 환경개선 부담금 면제와 혼잡통행료 50% 감면 등의 ‘보너스’까지 얻었다.
그렇다면 통상적인 주행 영역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그동안 렉스턴에 얹었던 엔진 중 출력이 가장 좋다는 191마력 엔진과 비교해보니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머뭇거림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배기음도 적당하다.
필터를 달아 출력이 줄기는 했으나 달리면서 오너가 이를 알아챈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5마력의 차이는 극한으로 차를 몰지 않는 이상 나타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크는 기존 191마력의 것과 동일한 41.0kg·m다. 계기판에 수입차들처럼 주행 연비 표시장치를 달면 더 좋을 것 같다.
엔진 성능은 합격점을 줄 만하나, 여전히 물렁한 서스펜션과 가벼운 스티어링 감각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렉스턴은 뛰어난 차체 강성에 비해 서스펜션이 물렁해 속도를 높이기가 망설여진다. 급제동 때에도 차체가 앞으로 숙여지는 노즈 다이브 현상이 심한 편이다. 부드러운 승차감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환영받을 세팅이지만 주행 안전성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렉스턴은 데뷔 6년째를 맞아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큰 단점을 찾기 힘들만큼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베라크루즈보다 앞서 저공해 엔진을 단 점은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기아 모하비가 데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은 그동안 사소한 품질 문제나 서비스 문제로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부분만 철저히 관리하더라도 기업의 이미지는 크게 올라갈 것이다. 렉스턴Ⅱ 유로가 그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쌍용 렉스턴Ⅱ 유로 노블레스
레이아웃---------- 앞 엔진, 네바퀴굴림, 5도어, 5인승 SUV
엔진, 기어--------직렬 5기통 2.7ℓ 터보 디젤 186마력/41.0kg ․ m 자동 5단
길이×너비×높이-- 4735×1890×1840mm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타이어 앞, 뒤----- 모두 255/60R18
연비, 가격-------- 10.7km/ℓ, 4119만원
BEST-------------- 저공해 엔진으로 인한 혜택
WORST-------------가벼운 스티어링과 지나치게 푹신한 서스펜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