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허점

입력 2017-02-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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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생사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아버지는 심사 대상에 오르고, 특검 수사 선상에 오른 아들은 오히려 쏙 빠지고….”

이달 말이면 ‘대주주 적격성 여부’에 대한 첫 심사를 받게 되는 블랙리스트(?)가 확정된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금융당국이 금융사 대주주의 위법 여부를 감안해 주주의 자격을 심사하는 제도다. 그동안 은행·저축은행에만 적용됐던 것에서 2013년 ‘동양 사태’ 이후 보험·증권·금융투자·비은행지주회사로 심사 대상 범위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제2금융권 대주주(재벌 총수)들도 적격성 심사를 받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번 심사 대상에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수사를 받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심사 대상에는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데도 말이다.

삼성생명의 경우 개인 최대 주주가 이건희(20.76%) 회장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삼성물산과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등 삼성생명 지분을 합치면 모두 26.3%로 이 회장보다 많다.

그럼에도 어째서 뇌물공여 등 혐의까지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 적격 심사 대상에서 비켜 갈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위반 여부를 따지는 법령의 범위가 촘촘하지 못해서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세법, 금융 관련법 등을 위반한 경우에만 시정명령을 받거나 10% 이상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최대 5년간 제한받는다. 즉,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까지 이 같은 혐의가 적발되지 않았다는 의미인 셈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심사 대상 범위가 좀 더 넓어지기는 했다. 기존 은행·저축은행에서 제2금융권까지 확대됐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재벌 총수들의 단골 범죄인 배임·횡령 등 죄를 지은 이들이 적격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나 형법이 적격성 심사를 위한 법령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재용 부회장은 물론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특별검사팀의 수사 선상에 올라와 있는 10대 그룹 총수 상당수가 올해 부적격 판정을 받을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또 다른 구멍도 있다. 정신 건강상 문제가 있을 경우 의사 결정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후견인이 지정되면 적격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 같은 지적이 지속되자 금융위원회는 좀 더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관련 기준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대주주 적격 심사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심사 대상을 피해가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법령이 허술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법망이 존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요주의 인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틀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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