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제프리 존스 前 암참 회장 “‘헬조선’이어도 나는 한국이 좋다...왜?”

입력 2017-01-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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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미래의동반자재단 이사장·前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제프리 존스

▲제프리 존스 미래의 동반자 재단 이사가 24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 = 이투데이

제프리 존스 미래의동반자재단 이사장(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이 ‘우리나라 사람’이 된 건 1971년 자원봉사 차 잠시 한국을 찾은 게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브리검영대 대학원 법학 석사를 마치고 대형 로펌에 자리를 잡은 그는 1980년 변호사 6명이 전부인 한국의 로펌행을 결정했다. 지금은 국내 굴지의 로펌으로 알려진 김&장 법률사무소 창립 멤버가 된 계기다. 이후 그는 한국에서 변호사, 자선사업가, 암참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 말은 물론 한국인의 정서까지 깊게 물들었나보다.

필자가 한국에 정착한 이유를 묻자 존스 이사장은 그런다. “‘정(情)’ 때문이었다”고. 그는 영어에는 ‘정’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정’이라는 것에 이끌려 낯선 땅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1971년 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존스 이사장은 당시 서울의 여러 집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아랫목을 권하는 한국인들이 신기했다고 한다.

“한강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날, 외국에서 온 손님이라며 가장 따뜻한 자리를 내주고, 없는 살림에 먹을 것을 꺼내 쥐여주는 한국 사람들에게 마음이 동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땅에 정착한 건 이런 감성적인 끌림 때문 만은 아니었다. 호기심도 작용했다. 존스 이사장은 “한국 정착을 결정한 1980년, ‘우리나라’는 ‘10·26 사건’과 ‘12·12 사태’ 발발 후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정국이었지만 그 한편으로는 혼란과 변화를 목격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2000년에는 ‘나는 한국이 두렵다’라는 책까지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IMF를 극복한 한국인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책을 쓸 당시에도 ‘헬조선’ 담론처럼 사회 전반에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존스 이사장은 “1999년에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64%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고 회고했다. IMF의 여파였다. 존스 이사장은 “이처럼 자신감을 잃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책을 통해 자긍심을 북돋아 주고 싶었다.”며 남다른 한국 사랑을 드러냈다.

현재 그는 미래의동반자재단 이사장,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회장으로 있으면서 대학생과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미래의동반자재단은 암참 산하 비영리 재단으로 실업자와 그 가정을 지원한다.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는 중병을 앓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존스 이사장은 미래의동반자재단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5년 전 치대 등록금을 지원받은 학생을 떠올렸다. 재단 장학금으로 치대를 다닌 장학생이 1주일에 한번씩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치과 진료를 봐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단다. 기부의 선순환이 일어난 셈이다. “앞으로도 기부의 선순환을 목격하며 재단을 운영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존스 이사장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애국심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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