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직언의 기술

입력 2017-01-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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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지인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전직 정치인, 대기업 임원이었는데 작금의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직언’으로 이야기가 미쳤다. 분야와 상관없이 공통적 이야기는 ‘직언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한 전직 정치인은 “팔로워, 특히 핵심참모는 리더에게 수족과 같다. 턱밑 직언은 쉽지 않다. 심기를 경호하는 것도 측근의 임무이기에 직언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직언은 외부 전문가, 인터넷, 언론을 통해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기에 굳이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수족은 머리가 없어야 합니까?”라고 농담으로 답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자면 ‘리더의 일탈’을 방치 내지는 변호하는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씨의 오도된 복종 인자’는 모두의 마음속에 어느 정도 존재하는 셈이다.

리더십 이론서, 강의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는 말은 ‘리더여, 직언을 들어라’이다. 반면에 피 튀기는 현장에서 인생선배들이 팔로워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직언은 자살골을 넣는 것과 같다. 직언은 금물이다. 설사 상사가 직언을 요구하더라도 절대 하지 말라”다.

현장에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직언을 했다가 리더의 뒤끝이 작렬하는 바람에 손해 본 이야기가 낭자하다. 직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안’을 문득 했다가 ‘그럼 자네가 한번 해보지’하며 ‘독박’을 썼다는 울상 이야기까지 합치면 ‘상사 앞에서의 입놀림’은 백해무익하다는 사칙연산이 쉽게 나온다.

리더가 아무리 입으로 직언을 장려한다고 해도 늘 조직은 침묵의 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피 보거나, 독박 쓰거나. 어느 거나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직언 활성화의 가장 쉬운 방법은 리더 개조 내지 계도다. 리더가 직언을 듣도록 의식을 환골탈태 개혁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음으로 팔로워 당사자를 바꾸는 방법이다.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며 산산이 부서지는 사육신 항의파가 되지 않을 바에야 군사부일체 충성이든, 표리부동 타협이든, 곡학아세 아부이든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창강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난세의 처세술 아닌가 하면서.

문제는 촉새처럼 툭하며 쏘아대든, 뱁새처럼 상사의 황새 같은 깊은 속을 무리해가면서까지 쫓아가든 어느 것이나 조직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쪼그리고 앉아 참모들과 같이 토론하는 것이 연상되는 서구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크게 다르진 않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고위층에 자기 의견이나 우려를 자주 표명하는 직원일수록 연봉인상, 승진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즉, 옳다고 주장할수록 소외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직언은 조직의 조기경보기로서 유용하다. 직언의 역설이다.

모기업의 임원은 ‘아부는 현재의 지위를 지켜주는 방어술이지만, 직언은 미래의 지위로 나가게 하는 적극적 공격술’이라고까지 말했다. 아부는 누구나 할 수 있어 밀리지 않게 할 뿐이지만, 기술적 직언은 아무나 할 수 없어 돋보이게 한다는 설명이었다.

상사의 심기경호도 하고, 본인의 역량도 드러내고, 조직의 비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삼조 직언의 기술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팔로워의 말하기 역량은 리더의 말하기 못지않게 중요하다. 직언을 상사에게 효과적으로 잘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당시 조 바이든 전 미국 부대통령과 격의 없이 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오바마 전 대통령은 주변 참모들과 쪼그리고 앉아 편안하게 토론한 것으로 유명하다.(출처=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페이스북)

첫째, 신뢰 마일리지를 쌓아라.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진다.

리더십의 대가 시드니 핀켈슈타인 다트머스 대학교수는 “상사에게 말발 서는 부하가 되기 위해선 먼저 하이퍼포머가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하이퍼포머 충성파가 하는 이야기와 불평불만분자가 하는 이야기의 영향력은 천양지차다.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 ‘믿을만한 사람’이란 평판이 있으면 존중받게 된다.

직언발이 서게 하는 확실한 방법은 먼저 신뢰를 쌓는 것이다. 신뢰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직언은 장작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모 기업의 임원은 “마일리지는 한 번 쌓아놓으면 계속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쓰면 차감된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직언을 한번 해서 효과적이었다고 그냥 들이대기만 해선 안 된다. 다시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그 임원은 10회 아부에 1회 직언의 비율로 할 때 가장 효과적이었다고까지 말했다. 비굴하거나 음험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팔로워를 칭찬할 때 칭찬-꾸중의 효과적 비율을 상향 소통에도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둘째, 끼워팔기를 하라. 소나기처럼 한 번에 퍼붓기보다 가랑비처럼 차츰 젖게 하라.

변화경영의 선구자 하바드 대학교 존 코터교수는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알리는 일을 적정수준의 1/10씩으로 나눠 하라”고 말한다. 한 번에 전신-전격노출을 하지 말란 이야기다. 독창적인 생각을 받아들여지게 하려면 ‘점차 익숙해지기’를 해야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특정 아이디어에 대해 10∼20회 정도 노출될 때 호감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복잡한 아이디어의 경우는 횟수가 그보다 조금 더 늘어나야 한다. 요컨대 상사에게 제안을 할 경우, 화요일 엘리베이터 안에서 30초 동안 짧게 설명한 뒤, 그 다음 월요일에 다시 짤막하게 상기시켜주고, 그 주 말미쯤에 상사의 의견을 구하는 식으로 조금씩 나누어 익숙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내용 둘 사이에 간단한 주장을 엮어놓고 시차를 두고 반복해 친숙해지게 하는 끼워팔기 기법도 권할 만하다.

모 기업의 임원 L은 15분 보고면 10분이 현안보고이고, 나머지 5분은 늘 추진 중인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배경설명이 늘 먼저 한 자락 깔려있기에 본안이 올라왔을 때는 수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넛지(nudge)어법을 택하라. 넛지(nudge)는 원래 ‘(특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영단어로 미국 시카고대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사용한 용어다. 직언에도 슬쩍 옆구리를 찔러 스리쿠션을 넣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문제점을 콕콕 찍어 지적하는 직접적 반대메시지보다는 간접적 비유나 사례로 스스로 깨달아 판단하게끔 하는 것이다.

직언의 목적과 효과성을 상기해보라. 당신이 바르고 곧은 충신임을 증명하는 것과 리더가 그 말을 수용해 개선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인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야기다. 알렉산더 삭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세계적 핵물리학자 실라드가 쓰고 아인슈타인이 서명한 중요한 편지를 보여주면서, 미국 정부가 독일에 앞서서 원자폭탄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심드렁했다. 그러자 넛지기법으로 작전을 바꿔 설득했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기선 발명자인 로버트 풀튼이 나폴레옹에게 증기를 이용한 함대를 건조할 것을 건의했지만 콧방귀만 뀌었지요. 만약에 나폴레옹이 그 때 로버트 풀튼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다시 쓰여졌겠죠.”

사례를 통해 깨닫게 하자, 그 방법은 먹혔다. 루스벨트는 결국 추진키로 결정했다(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 개발 설득편지 쓴 것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같은 리더라도 팔로워의 말하기에 따라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레 좌절, 포기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말하기부터 바꿔보라.

그래도 안 바뀐다고? 그렇다면 떠나라. 어차피 나무가 새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새가 나무를 선택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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