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일수록 ‘논-빅(Non Big) 4’ 회계법인을 찾는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11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주최한 언론 대상 회계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금융위원회가 이달 말 지정감사인 제도 도입과 관련한 입장 발표를 앞두고 열린 자리다. 금융위는 지난해 8월 회계제도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한국회계학회 소속 경영·회계학 교수 12명과 함께 기업·감사·감독 등 분과별로 개선방안을 연구해왔다.
이 TF 일원인 박 교수는 “12명 교수들이 작년 하반기 동안만 30여차례 만나 회의를 했다”며 “현재 감사시장이 비정상적이라고 호소하는 업계의 목소리에 대해 실질적인 근거를 확인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TF는 지난해 12월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회계제도 개선방안 용역보고서’를 냈다. 상장법인 감사인 선임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무상황이 좋은 기업은 소위 ‘빅 4’로 불리는 삼일·삼정·한영·안진회계법인을 선호했다. 반면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은 ‘논-빅 4’ 회계법인을 주로 택했다.
박 교수는 “빅 4 감사인이 부실기업과 감사계약 체결을 꺼리기도 하고 피감 회사가 감사 보수 인하와 좀 더 입맛에 맞는 이익 조정을 위해 중·소 회계법인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무제표의 분식 가능성이 높을수록 고품질 감사를 통해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후 상장법인의 평균 감사시간은 2009년 1067시간에서 2013년 1448시간으로 36% 증가한 반면 감사보수는 같은 기간 8847만원에서 1억877만원으로 23% 느는데 그쳤다. 감사인 입장에서 많은 시간을 투입 해 고품질 감사를 수행 할 인센티브가 줄어든 상황이다.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1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71.9%가 감사보수 인하 요구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4대 회계법인 소속 응답자의 93%도 감사 증거를 적시에 제공받지 못하는 등 회사와 감사인 간 갑-을 관계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에 앞서 발표한 국기호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과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역시 현재 외부감사시장이 왜곡돼 있어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국 회장은 “변호사가 의뢰인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과 달리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 업무와 공인회계사의 감사업무는 의뢰 기업이 아닌 제3자를 위한 공적재화”라고 설명했다. 감평사나 회계사에 대해 기업이 평가를 의뢰하지만 그 정보를 사용하는 실질적 고객은 국세청, 금융기관, 투자자 등이라는 것이다.
국 회장은 “원칙적으로 회계사와 감평사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고 감사 보수는 절대 협상의 대상이 돼선 안되지만 현재 감사시장에서는 비용을 대는 기업이 ‘갑’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정부 주도로 외부감사제도가 도입되면서 생긴 구조적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기업들이 외감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수요를 갖기도 전에 ‘방어해야할 서비스’로 인식하게 되면서 피감법인이 고품질 감사를 찾기는커녕 불필요한 규제비용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실기업일수록 부실을 감추기 위해 부실한 감사를 찾게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며 “현재 외부감사시장의 평균보수가 매우 낮은데 이들 부실기업은 생계가 어려운 회계법인에 웃돈을 주면서 부실감사를 요구하는 기형적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회계제도 개혁과 관련한 대안으로는 △감사정보이용자의 외부감사인 선정 참여(선임 방식 개선) △정보 이용자의 정보 제공 대가를 감사보수에 포함 △감사 투입 시간 또는 보수 기준 신설 △감사보수 공개제도 등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