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금] 프랑스도 대선의 해…‘공화국의 가치’ 지킬 수 있을까

입력 2017-01-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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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가장 큰 위험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또다시 아무나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다.”

프랑스의 2017년은 대선과 상·하원 선거가 몰려 있는 선거의 해다. 이변이 없는 한 대선에서 1차 투표 탈락, 하원 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되는 집권 사회당에는 2017년이 ‘공포의 해’가 될 것이라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전망했다.

그러나 사회당의 예고된 완패보다 더 관심을 끄는 이번 프랑스 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와 좌·우 주류 세력이 연대하는 ‘공화전선’의 대결이 예상되는 결선 투표다. 프랑스의 대통령(임기 5년, 1회 연임 가능)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우리와 다른 점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한다는 점이다. 1965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온 경우는 없었다. 이번 대선에는 1차 투표에 무려 15명 정도의 후보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인위적인 후보 단일화 없이 유권자의 투표로 결선 진출이 결정된다.

연이은 테러로 고조되고 있는 반(反)이민 정서에 힘입어 ‘프랑스의 트럼프’라 불리는 르펜은 오는 4월 23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무난히 2차 결선 투표(5월 7일)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결선 투표에서 그가 얼마나 선전할지는 미지수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 후보가 대선 결선에 진출할 경우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좌·우 주류 정당이 연대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사회당 후보 리오넬 조스팽을 물리치고 결선에 진출,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양자 대결을 했을 때 좌파 유권자들이 대거 시라크를 지지한 것이 대표적인 선례다.

그러나 올해는 경우가 좀 다르다. 지난 2년간 프랑스에서의 연이은 테러와 트럼프의 승리, 브렉시트, 이탈리아의 국민투표 부결 등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지각 변동으로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공화전선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그의 신년사에서 트럼프의 승리와 브렉시트 등을 언급하며 “역사에는 모든 것이 요동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런 때다”라고 전제한 뒤 “벽 뒤에 숨는 나라, 출신 지역으로 국민을 차별하는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다”라며 반EU와 반이민을 내세운 국민전선의 집권을 막기 위한 프랑스 좌파의 단결을 촉구했다.

지지율이 4%까지 떨어져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후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된 올랑드는 장고 끝에 지난달 재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올랑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뉘엘 발스 전 총리 등 7명이 경합할 예정인 이달 22일(1차)과 29일(결선)의 좌파 경선은 자중지란의 난투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대두하고 있다.

발스 전 총리는 지난달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분열된 프랑스 좌파를 뭉치게 해 대선에서 승리하도록 하고 싶다”며 “프랑스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정치인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어법이다. 그는 또한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에 많이 참가해 내게 힘을 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좌파 세력을 결집하겠다는 발스의 선언과는 달리 사회당 대선 경선은 친기업파인 발스 전 총리와 더욱 선명한 좌파 노선을 견지하는 아르노 몽트부르 전 경제장관과 브누아 아몽 전 교육장관 간에 노선 다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발스 총리는 내무장관(2012년 5월~2014년 4월) 재직 당시 불법 이민자와 무슬림 여성 복장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해온 사회당 정책과는 차이를 보였다. 총리에 취임한 뒤에는 기업 감세와 노동법 개혁안 등을 강행 처리해 사회당 내에서는 친기업적 인사로 꼽힌다. 발스 전 총리는 여론조사기관 IFOP의 사회당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사회당 지지자의 61%, 좌파 유권자의 45%의 지지를 받아 경선에서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는 올랑드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불만이 커진 좌파를 끌어안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더해 그가 올랑드 정부의 실정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누가 좌파 후보가 되든지 2002년 대선 때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1차 투표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 궁 앞에선 필자(왼쪽). 금년은 엘리제 궁의 새 주인을 뽑는 해이다. (필자 소장 사진)

한편 올랑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내각에서 사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로운 정치 운동을 시작하겠다”며 ‘앙 마르슈(Enmarche, ‘나가자’라는 뜻)’라는 정치 운동을 창설해 무소속 후보로 이번 대선에 출마했다.

‘민주적 혁명’을 실현할 것이라고 공약한 39세의 마크롱 전 장관은 프랑스 정치 시스템이 마비되어 있다면서 “약자를 보호하는 한편 능력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분출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해 우파 진영도 긴장시키고 있다. 그는 장관으로 재임할 때 경제 활성화를 위해 파리를 포함한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일명 마크롱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투자 은행가 출신으로 선거에 한 번도 출마한 적이 없는 그가 주류 정당의 지원 없이 이번 대선에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파는 물론 우파지지층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프랑스인의 55%는 마크롱이 우파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보다 더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파 지지자 26%와 국민전선 지지자의 56%도 마크롱이 피용보다 더 좋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변화를 갈망하는 프랑스의 민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설상가상, 프랑스 사회당은 대선 한 달 후인 6월 11일(1차)과 18일(결선)에 있을 하원 선거에서도 참패가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미테랑 정부 시절인 1993년 하원 선거에서 프랑스 사회당이 577석의 10분의 1인 57석밖에 배출하지 못했던 때와 비슷한 현상이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프랑스 의회는 하원 우위의 양원제로, 총리는 하원에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출신이 맡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하원의 다수 의석 확보는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필수적이다.

현재의 추세로 간다면 이번 프랑스 대선은 피용, 르펜, 마크롱 간의 3파전이 될 가능성이 큰데, 이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 평론가 알렉상드르 드베치오는 르피가로 기고에서 영국이나 이탈리아 못지않게 유럽회의주의(L′euroscepticisme)가 고개를 들고 있는 프랑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위험은 또다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무나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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