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편집위원
워터게이트 부패 스캔들의 주인공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1913.1.9~1994.4.22)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이 사건으로 모든 것을 날리고 스스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다.
닉슨은 1946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인다. 그는 유능한 정치가이자 행정가로서 매사 최선을 다했지만 그에게는 정치인으로서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음울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미지는 대중적 인기에서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비교적 쉬운 상대로 여겼던 케네디에게 패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1962년 주지사 선거에서 패하자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재기해 1968년 민주당 험프리 후보를 누르고 미국 제37대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 재임 시절 그가 펼친 정책은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핑퐁외교로 껄끄럽던 중국과 수교하고, 베트남과 파리협정을 맺어 베트남전을 끝낸다. 당시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이슈이던 물가와 실업 문제도 무난하게 처리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공화당 후보 닉슨은 한때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를 19%포인트나 앞설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닉슨은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했다. 항상 적들에 대한 경계심과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성향은 성장기와 관련이 있었다. 하버드대에 갈 만큼 성적이 우수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휘티어대에 입학했고, 이는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나온 다른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인들에 대한 콤플렉스로 이어진다.
나름대로 쌓은 업적에도 선거에서 불운했던 이유도 그런 주류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믿은 닉슨은 뭔가 ‘꼼수’를 부려 물밑에서 ‘적들’을 감시하고 공격하려는 시도를 곧잘 했다. 결국 콤플렉스가 그의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