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트럼프의 ‘대만카드’가 향후 미중관계에 갖는 의미

입력 2016-1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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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당선 축하 전화를 받은 것은 분명 중국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기습적인 도발이었다. 당선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상이 대만 총통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한 것은 1979년 단교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돌출적인 언행 때문에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중국 정부 역시 트럼프의 예상밖 당선에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우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인이 ‘대만 카드’를 재점화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중국이 ‘선전포고’라고까지 인식하게 되는 까닭이다.

역시 초점은 미국과 대만 두 지도자 간의 전화 통화가 트럼프 신정부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라는 오랜 합의에 변화를 상징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전화 통화가 향후 트럼프 정부의 대만 정책의 변화를 시사하는 의도된 기획인지, 아니며 트럼프 스타일대로 즉흥적인 해프닝이나 실수에 불과한 것인지 하는 것이다. 통화 초기에는 트럼프의 성향이 투영된 돌발적 실수이거나 대만 문제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부족의 결과라는 의견이 많았다. 전화 통화가 예상할 수 없었던 돌발적 선택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미·중 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한 판단이다. 그런데 이후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의도된 기획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요컨대 전화 통화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7월 말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 이전부터 그의 측근들이 검토하고 준비해 온 새로운 ‘대만 관여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응은 여전히 모호하다. 즉 “전화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한두 시간 전에 알았다”고 해 전화 통화가 즉흥적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이해하지만 중국과 환율 및 관세, 북핵, 남중국해 문제 등 여러 사안에 대한 협상이 되지 않는다면 이에 왜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중국에 대한 ‘협상 카드’로 이용할 의사도 없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신정부가 향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백악관에서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중국 측과 접촉해 오랫동안 지속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1972년부터 지난 44년간 일관되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해왔다. 그만큼 ‘하나의 중국’ 원칙은 미·중 관계가 제아무리 나빠도 넘지 말아야 할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자리 잡아 왔던 것이다.

1995년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이 코넬대학 동문회 참석을 빌미로 미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위협을 감행하고 이에 대응해 미국 역시 항공모함을 대만해협으로 이동시키는 극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오히려 이러한 최악의 경험이 교훈이 되어 이후 미·중 양국은 ‘대만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를 위기로 몰고 가는 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여 왔다. 심지어 역대 미국 정부는 오히려 대만 정부가 독립을 주장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마지노선을 자극하고, 이로 인해 미·중 간의 대립 국면이 조성되는 것을 우려해왔다. 예컨대 미국은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이 집권할 당시 대만의 독립정책을 견제하기도 했다. 대만 문제로 미·중 관계가 위기로 몰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표지에 실은 중국 시사지 ‘글로벌 피플’이 중국 상하이의 한 신문 가판대에 놓여 있다. 상하이/AFP연합뉴스

트럼프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선인이 앞서 시사했듯이 ‘대만 카드’를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거나 협상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과연 ‘대만 카드’가 효과적인 대(對)중국 견제 또는 협상용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역대 정부에서는 ‘대만 카드’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사실상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2008년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한 이후 친중국 정책으로 인해 양안 관계가 안정적이었고, 중국 역시 부상에 대한 자신감으로 ‘대만 문제’을 체제 정당성의 도전 요인이라는 인식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이는 중국의 대만 정책이 사실상 기존의 ‘해방’이라는 비현실적 부담에서 벗어나 ‘독립 방지’라는 현실적 정책으로 전환된 요인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의 ‘대만 카드’를 통한 중국 견제는 사실상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만큼 대만 문제로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해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시도도 감소하였다.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에서 여전히 민감한 미결의 쟁점이기는 하지만 결코 돌발적인 새로운 갈등 요소는 아니다. 미·중 양국은 이미 44년간의 경험을 통해 대만 문제에 관련해 상호 어떻게 자극하고 대응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축적되어 있다. 그만큼 문제가 불거졌을 때 타협의 경로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중 관계 전반을 위기로 빠트리는 돌발적인 변수는 아니다.

전화 통화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이를 방증한다. 한편으로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기자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유관 방면에 엄중한 항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작 주요 공격의 화살은 미국이 아닌 대만을 겨냥하고 있다. 예컨대 왕이 외교부장은 전화 통화를 ‘대만이 일으킨 장난질’ 또는 ‘꼼수’ 정도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새로 출범할 트럼프 정부와의 소통의 끈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와 차이잉원이 전화 통화한 날 대표적인 친중국 인사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초청해 극진히 예우했다. 키신저는 시진핑의 표현대로 “중·미 관계의 개척자이자 산증인”이다.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 합의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키신저는 시진핑과도 이미 7차례나 회동을 한 그야말로 ‘중국과 시진핑의 오랜 친구’이다. 아울러 키신저는 트럼프가 스스로 존경한다고 공언한 몇 안 되는 외교 원로이자 실질적으로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시진핑이 익숙하지 않고 불확실한 트럼프 정부와의 소통을 위한 사전 포석을 게을리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럼프 측도 시 주석과 특별한 오랜 인연이 있는 테리 브랜스테드(70) 아이오와 주지사를 주중대사로 내정하였다. 중미 양국 정부가 공식적인 출범을 앞두고 견제와 탐색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이 탐색의 시기에 전화 통화의 사례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오랜 시간 불안정한 적응의 시간을 보낼 것인지가 주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내년 1월 7일로 예정되어 있는 차이잉원 총통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이 ‘대만 문제’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만 정부는 중남미 방문 시 미국 주요 도시를 경유지로 선택해 미국 정계의 고위 인사들과 비공식 정치 접촉을 시도하는, 이른바 ‘경유지 외교’을 활용해왔다. 민감한 시점에 차이잉원 총통이 다시 ‘경유지 외교’를 시도할지, 그리고 시도할 경우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향후 미·중 관계에서 대만 문제의 파급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만일 차이잉원이 뉴욕을 경유지로 선택하고 트럼프 당선인과 공항에서의 회동을 요청할 경우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미국 신정부의 대만 문제에 대한 정책 방향을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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