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통화위원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졌다.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연구기관들마저 내년 성장률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는 가운데 해외투자은행(IB)들은 내년 한은이 수차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7일 KDI(한국개발연구원)는 ‘대내외 여건 변화가 국내 소비자물가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향후 국제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세가 확대되지 못하면 경기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며 “국내 통화정책이 보다 완화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질적으로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한 셈이다.
이는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과 맞닿아 있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400조5000억 원)은 처음으로 400조 원을 넘어서며 ‘슈퍼예산안’이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경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속을 뜯어보면 내년 예산안은 추가경정을 포함한 올해 예산(398조5000억 원)보다 0.5% 남짓 증가한 데 불과해 실제로는 긴축 재정이라는 시장의 시각이다.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성장절벽을 강조하면서 경기부양의 책임을 한은에 떠넘긴 모양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산 규모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 힘들뿐더러,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지출 규모가 축소돼 실질적으로는 긴축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 경기 전망 역시 우울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0.4%포인트 낮춘 데 이어, KDI는 2.4%로 0.3%포인트 내렸다. 그동안 국책 연구기관이 다른 기관보다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한국 경제에 닥쳐올 위기는 더욱 예사롭지 않다.
이어 8일 기획재정부도 12월호 ‘그린북(최근 경제동향)’을 통해 최근 소비ㆍ투자 심리 위축 등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최근 국내 생산과 투자 전반이 부진한 가운데 회복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해외 IB마저 한은의 내년 금리 인하를 예측하고 나섰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레이즈,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해외 주요 IB들은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상반기 중 1~2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심지어 모건스탠리는 한은이 내년 3차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김지만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재정이 조기에 집행되고, 추경이 하반기로 넘어간다고 볼 때 마땅한 경기 부양책이 없다”며 “한은이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