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에 말 걸다] 왕 위의 왕이고자 했던 ‘간신’들

입력 2016-12-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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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奸臣)의 사전적 의미는 ‘간사(奸邪)하고 간악(奸惡)한 신하로, 임금에게 능력이 아닌 아첨으로 권력을 얻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재물과 지위를 높여가는 데만 주력하는 자들’이라 되어 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진시황 대의 환관이었던 조고(趙高)가 있었고, 후한 대에 이르면 최근 우리 귀에 익숙해진(?) 십상시라 불리던 열 명의 환관이 존재했다.

오백 년 조선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간신은 성군(聖君)에게는 기생할 수 없다. 다스리는 자가 불량할수록 간신은 등장한다. 조선 왕조에는 연산군 대를 대표적인 간신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연산은 그가 가진 희대의 폭군 캐릭터 덕분에 사극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1962년 영화배우 신영균이 연산군 역할을 했던 영화 ‘연산군’을 시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유인촌을 연산으로 내세운 ‘연산일기’, 2005년에 제작된 광대와 연산군과의 미묘한 동성애 코드를 가지고 새롭게 풀어써 천만 영화 신화를 만들어 낸 ‘왕의 남자’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작년에 개봉된 영화 ‘간신’에서는 연산군 시대에 간신의 대명사인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가 임금에 대한 어긋난 충성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비록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간신의 시각에서 연산군을 바라보았고 연산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 폭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죄 없는 사람들의 핏빛 향연을 솔직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아냈다.

연산의 어린 시절은 오히려 평범했다. 아버지인 성종의 각별한 애정을 받고 자란 연산은 성종이 대신과 대간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한 나라의 왕이 왜 신하들에게 휘둘려야 하는지 연산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위에 오른 연산이 곧바로 패악의 군주로 돌아선 건 아니다. 즉위 후 10년간은 대체로 평범한 왕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대간과 신료들에 대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영화 ‘간신’에서도 사간원들이 용서를 청할 때 연산은 “나도 역사에 아름답게 기록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아오. 허나 위를 능멸하는 풍습은 고치지 않을 수 없소”라며 일축한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기회 삼아 사림들의 목숨을 쓸어 담았던 무오사화를 통해 자신의 반대파를 축출하더니 이번에는 자신의 어미 폐비 윤 씨의 죽음에 관계된 자들을 부관능지(시신이 든 관을 쪼개 사지를 찢어버리는 극형), 부관참시(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거는 극형)하여 조선왕조 최고의 폭군으로 기록된다.

▲연산과 임숭재.

영화의 첫 장면도 폐비 윤 씨의 생모가 폐비 윤 씨의 피가 묻은 적삼을 임사홍(천호진 분)에게 건네주는 장면이다. 이를 임사홍은 연산에게 전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임사홍이 연산을 도발해 정적을 제거한다. 무릇 간신은 왕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면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코자 하는 속성이 있는 법이다. 특히 임사홍의 아들 임숭재(주지훈 분)는 그의 주관적 입장과 시각으로 전체적인 영화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 그도 역시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연산을 길들여 ‘왕 위의 왕’이고자 했다. 그는 연산에게 짧은 인생이 아쉽다며 ‘단 하루에 천 년의 쾌락’을 약속한다.

임 씨 부자는 채홍사로 임명된 후, 전국의 1만 미녀를 모집하여 그들의 미모와 기예를 판단하고 각각 운평과 흥청으로 분류하여 연산을 모실 만반의 준비를 시킨다.

여기에 임 씨 부자에게 눈엣가시 같은 장녹수가 등장한다. 연산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장녹수를 경계코자 임사홍은 단희(임지연 분)라는 미모의 젊은 아이를 연산에게 바친다. 이에 질세라 장녹수 역시 설중매를 내세워 연산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궁중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진다.

임사홍과 한편이 된 듯해 보이는 단희는 사실 연산군이 무오사화 때 멸족한 사림파 중의 한 명인 김일손의 여식이다. 단희는 아비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연산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녀는 육체적인 매력으로 접근하는 설중매와는 다르게 연산의 마음을 훔친다.

연산군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장녹수다. 장녹수는 집안이 가난하여 권세가의 가노로 지내다가 연산의 눈에 들었는데, 당시의 나이로는 상당한 서른(아마도 지금이면 마흔 살쯤 되는)에 미모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피부가 어린애들처럼 고왔고 애교가 넘쳤다.

영화 ‘간신’은 연산의 여자들로 구성된 운평과 흥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연산은 본래 시를 좋아하고 가무에도 능했다고 전해지는데, 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성대하게 울려 한바탕 노는 것을 즐겨 했다.

그러나 연산의 미색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연산을 위한 변명’이란 책을 보면 연산은 기본적으로 여색을 탐한 게 아니고 허무주의에 입각한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허무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는 연산이 지은 시 구절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 영화에서 연산이 술에 취해 임사홍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도 한 시구다. ‘어차피 인생은 풀잎의 이슬 같은 것을….’

임숭재는 호가호위하며 조선의 대표적 간신다운 행보를 보이고 연산의 신임은 갈수록 두터워진다. 영화에선 연산과 임숭재가 함께 반정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실제론 연산 11년에 연산보다 먼저 죽는다. 그의 유언은 마지막까지 연산을 걱정하며 “죽어도 여한이 없사오나, 다만 미인을 바치지 못한 것이 한이옵니다”였다고 전해진다. 연산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알아줄 만하다.

연산은 중종반정으로 무너지며 결국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병사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아내가 보고 싶다”였다. 1만의 미인들과 방탕하게 놀았지만, 결국 한 여인네 품으로 돌아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연산은 재위 10년간은 안정적 기조로 정사를 폈으나, 자신의 권력을 믿고 자신에게 달콤한 말만 하는 간신들을 옆에 두어 결국 망하였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역사와 영화와 작금의 현실이 뒤섞여 내내 헷갈렸다. 간신의 최후는 참혹하다.

▲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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