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C30 T5 vs. 골프 GT TDI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아우토반. 세계에서 내놓으라하는 차들이 성능을 뽐낼 수 있는 이곳에 변화의 조짐이 온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페라리, 포르쉐 등이 주름잡는 추월차선 자리에 작은 해치백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 것. ‘작지만 매운 고추’를 몰라봤던 이들이 당황했음은 물론이다. 그 주인공이 오늘날 ‘핫 해치’의 대명사인 폭스바겐 골프 GTI다.
세월이 흘러 선구자의 길을 걸은 골프 GTI를 추종하는 차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가운데 최근에 등장해 관심을 모으는 모델이 볼보 C30 T5다. 그동안 ‘볼보’하면 고루하고 따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C30 T5는 스타일부터 화끈하다.
▲스타일은 막상막하
C30 T5의 앞모습은 S40과 형제차인 듯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에어댐을 달아 인상이 한층 스포티하게 느껴진다. C30 T5는 브라운과 블루, 그레이 등으로 색상 선택이 가능한 보디 킷이 준비된다. 각자 취향에 맞게 차를 꾸밀 수 있도록 한 개발자를 칭찬해주고 싶다.
크롬 재질의 듀얼 머플러 팁은 탄탄한 뒷모습을 완성해주고 있다. 여기에 알루미늄 스포츠 페달까지 더해져 운전의 맛이 한층 더해졌다. 겉모습만 보자면 골프 GTI에 전혀 꿀릴 게 없고 오히려 패션 감각은 더 앞서는 느낌이다.
그러나 실내에서는 이런 맛이 조금 부족하다. 스포티한 차들은 핸들 조작이 빨라야 하는데 C30은 스티어링 휠을 최대한 짧게 설정해도 삐쭉 튀어나왔다. 이렇게 되면 팔을 적당한 간격으로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C30 T5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섬세한 음질의 다인오디오. C30 2.4i 일반 모델과 달리 고음과 저음 영역을 풍부하게 재생해 오디오 마니아들도 별도로 튜닝 욕구가 들지 않을 수준이다. 운전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다인오디오는 C30 T5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골프 GT TDI는 얼핏 보면 영락없는 GTI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그어진 붉은 띠나 앞 범퍼 양쪽에 달린 사이드마커 등을 제외하면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골프 TDI를 구입해 GTI 스타일로 개조하는 이들이 동호회를 중심으로 늘어가는 추세여서 GT TDI에 마니아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타이어는 GTI와 똑같은 앞뒤 225/45R17. 노면 접지력은 물론이고 ‘자세’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는 타이어와 휠을 달고 있다. C30 T5는 205/50R17 사이즈로 단면 폭이 조금 좁고 편평비도 높다. 대신 로워링 킷을 통해 차고를 낮춰 이를 만회하고 있다.
GT TDI의 실내는 GTI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우선 GTI 로고가 새겨진 일체형 시트가 아니고 TDI와 같은 일반형 시트를 달았다. 또한 패들 시프트를 달았으나 뛰어난 그립 감의 GTI 핸들 대신 일반형 핸들을 달았다. 오디오의 음질은 훌륭하나 C30 T5의 다인오디오에는 조금 못 미치는 편이다.
▲연비냐, 가속성능이냐
자동 5단 기어와 짝을 이룬 C30 T5의 터보 엔진은 32.6kg·m의 최대토크를 1500rpm부터 5000rpm까지 고르게 뿜어낸다. 최고출력 230마력 엔진은 롱 스트로크 타입으로 고속으로 갈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출력에 비해 섀시감각이나 서스펜션 세팅은 좀 무른 감이 있다. 독일차의 단단함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운 점이 될 것이다.
GT TDI는 출발이나 저속에서 조금 움찔하는 모습이 TDI와 닮았다. 하지만 급가속을 시도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야수로 돌변한다. 중속 영역에서만큼은 가솔린 엔진의 C30 T5보다 가속 감각이 확실하게 앞선다. 또한 시속 80km 이상 넘어서면 가솔린 엔진과 전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숙하다.
GT TDI는 폭스바겐 디젤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엔진이지만 역시 디젤 엔진답게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가솔린과 맞대결은 약간 힘에 부친다. C30 T5가 고속에서 쭉쭉 뻗어갈 때, GT TDI의 계기판은 시속 150km 이후 약간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린다. 0→시속 100km 가속에서도 C30이 7.1초, GT가 9.3초로 2초 이상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디젤과 가솔린의 특성 차이도 있지만 타는 이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갈리기 때문이다.
두 차의 연비는 디젤과 가솔린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C30 T5의 공식 연비는 9.5km/ℓ로 7군에서는 1등급인 반면 GT TDI는 유럽 기준으로 15.6km/ℓ다. GT TDI의 국내 공식 연비가 아직 나오지 않아 당장 맞비교는 힘들지만, 골프 일반형 TDI의 공식 연비 15.7km/ℓ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번 주유로 시내/시외 혼합 주행 때 대략 700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어 경제성도 뛰어나다.
다만 GT TDI는 DSG 기어의 약점인 연결감에서 C30 T5의 기어 감각보다 열세다. 저속에서 가속 페달을 밟았다 땠다 하면 차가 살짝 울컥 거리는 게 마치 수동기어를 처음 모는 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DSG 기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해보인다.
값은 C30 T5가 4천170만원이고, GT TDI는 3천880만원이다. C30 T5는 시승차처럼 쿨 패키지로 단장한 모델은 4천340만원이다. 아마도 고성능을 원하는 이들은 쿨 패키지를 선택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4천만원 중반대의 BMW 3시리즈, 렉서스 IS250을 놓고 고민이 될 거 같다.
4천만원 초반대의 모델을 고르는 이 중 오너 혼자 혹은 애인이나 친구를 한명 태우고 다닐 이라면 두 모델 모두 타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스타일에서는 C30 T5가 근소하게 앞서는 느낌이지만 주행 특성은 개성이 뚜렷해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힘들다. 그래도 결론을 내려야 한다면 호쾌한 스포츠 주행을 중시하는 이라면 C30 T5를, 가속성능과 함께 기름 값 지출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면 GT TDI가 낫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