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_도전하는여성 (19)김이나 작사가] “난 예술가 아닌 기술자…잘 팔리는 노랫말 써왔죠”

입력 2016-11-2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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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작권료 1위·가온차트 작사가상…화려한 이력? 생계형 ‘투잡’으로 시작

▲김이나 작사가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내 음원저작권료 수입 1위(2015), 가온차트 K-POP 어워드 3년 연속 올해의 작사가상(2012~2014)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사가 김이나는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동방신기, 엑소, 샤이니, 브라운아이드걸스, 아이유, 조용필, 이선희 등 아이돌부터 중견 뮤지션까지 세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300여곡의 노랫말을 썼다.
약 4분 30초.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음악에 감성을 입힌다. 각양각색의 선율에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담아 우리 말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것. 가끔은 주술관계가 맞지 않아도 괜찮다. 음운 반복과 동음이의어 같은 언어유희나 도치·대구 같은 다양한 문장 표현법도 허용된다. 다양한 언어적 기교를 발휘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추억을 회상하게 하며 때론 위로를 의도한다. 음악은 위대하다고들 하는데 그 배후(?)에는 노랫말을 쓰는 작사가가 있다.

기자가 만난 김이나 작사가는 자신의 자리를 ‘변방’으로 칭했다. 정면에 나서는 것보단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자신의 창작물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뮤지션과 앨범 콘셉트부터 녹음, 마스터링 등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작곡가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아마도 그 덕에 자신의 창작물이 빛을 발한다는 의미를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국내 음원 저작권료 수입 1위(2015), 가온차트 K-팝(K-POP) 어워드 올해의 작사가상(2012~2014)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사가 김이나. 대중에게 익숙한 여성 작사가로는 유일하지 않을까. 김형석, 유희열, 신사동 호랭이, 용감한 형제, 이단옆차기 등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유명 작곡가는 다수 존재하지만 작사가가 대중성을 갖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어떤 노력과 도전이 그를 이 자리에 서게 했을까.

“저를 알리는 것에 소극적이지 않았어요. 작사가는 작곡가와 달리 자기 PR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작사가는 완전히 1인 환경에서 혼자서 글을 쓰고, 약 90% 의뢰를 통해서 일이 주어지죠. 음악 시장에서 빨리 떠오르는 이름이 되고 싶었어요. 직업 특성상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휴식기를 가질 수 있지만 원할 때 복귀할 순 없어요. 트렌드에서 밀려나거나 시장에서 잊혀지면 끝이죠. 선배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지금까지 슬럼프는 없었지만, 언젠간 겪게 되겠죠. 나를 오만하게 여겨 ‘글만 잘 쓰면 됐지 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삶에는 업 앤 다운(Up & Down)이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해요.”

이처럼 김이나 작사가는 현실적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자신을 예술가가 아닌 일꾼이라 칭하면서 시장에서 ‘잘 팔리는 글’을 써왔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 직업은 어디까지나 수요가 있어야 존재하고, 대중음악이란 많은 사람의 공감을 통해 소비되는 것이니 작사가가 너무 자신의 세계관에 몰입돼 고집을 부리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상업 작사가는 가수와 곡이 가장 멋있어 보일 수 있도록 감정의 언어로 밑그림을 그려주는 기술자라고 한다.

“제가 쓴 노랫말이 내 작품인 건 맞지만 완성은 가수의 몫이죠. 가사를 아무리 잘 써도 내가 쓴 의미가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 없어요. 가수는 하나의 악기로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면서 내가 쓴 노랫말을 평생 부를 사람이죠. 팔린다는 것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닌 가수에게 그 기대를 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전반적인 작업을 의미해요.”

어느덧 14년 차 작사가가 됐다. 2003년 성시경의‘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300여 곡의 노랫말을 썼다. 동방신기, 엑소, 샤이니, 브라운아이드걸스, 아이유, 조용필, 이선희 등 아이돌부터 중견 뮤지션까지 세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감성을 녹여내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던 이유는 김이나 작사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명확해진다.

남녀불문하고 말투까지 흉내내 완벽하게 티가 안 난다는 평가와 함께 인기 대필가로 꼽히던 학창시절, 지독하게 외롭고 고단했던 미국 유학생활, 그리고 사랑은 단순한 화학작용에 불과하다는 환상을 깨뜨려 준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까지의 삶의 과정은 다양한 감정의 깊이를 표현하는 법을 체득하고 내면과 외면 사이의 관계 등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게 해줬다. 그 깨달음은 자연스레 가사에 녹아들었다.

▲김이나 작사가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내 음원저작권료 수입 1위(2015), 가온차트 K-POP 어워드 3년 연속 올해의 작사가상(2012~2014)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사가 김이나는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동방신기, 엑소, 샤이니, 브라운아이드걸스, 아이유, 조용필, 이선희 등 아이돌부터 중견 뮤지션까지 세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300여곡의 노랫말을 썼다.
“본래 꿈이 작사가는 아니었어요. 내 삶은 생각보다 평범했죠. 고등학교시절 목표는 대학 졸업 후 생활비를 책임질 수 있는 여성이 되는 것이었고, 미국 유학 후에는 월급을 나에게 줄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이었어요. 언어에 대한 욕심으로 아버지가 계신 미국으로 가서 새어머니, 이복동생과 함께 살았어요. 대학 입학 이후 독립했는데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는 월세 내기도 빠듯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햇반과 라면으로 버텼어요. 생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죠. 향수병도 지독하게 앓았어요. 그 힘든 기억 탓에 장기간 여행도 안갈 정도니까요. 전 서울을 가장 좋아해요.(웃음)”

한국에 돌아온 김이나 작사가는 또래처럼 사회초년생의 삶을 살았다. 그런 일상들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평소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막연하게 음악 사업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가수보단 음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인 프로덕션에 매력을 느꼈고 음반이나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밥집에서 팬이었던 김형석 작곡가와 마주쳤다. 김이나 작사가는 이때다 싶어 다짜고짜 가서 “작곡가가 되고 싶어요”라고 당차게 고백했단다. 20대 초반 젊은 여성의 당돌함이 좋았는지 김형석 작곡가로부터 레벨 테스트 기회를 얻게 됐다.

“결과는 엉망진창이었죠. 형편없는 실력에 꿈은 무너지고 말았어요. 작곡은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씁쓸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죠. 그러던 중 김형석 작곡가가 제 블로그를 살펴보고는 ‘넌 가사를 쓰면 잘 쓸 스타일’이라고 조언을 해주셨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당시 일상을 담아내고 친구와 일기를 주고받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했었거든요.”

학창시절 쌓아온 ‘대필 내공’이 빛을 발한 걸까. 김형석 작곡가는 김이나 작사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 줬고, 김이나 작사가는 음악 주변을 오랫동안 맴돈 끝에 결국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났다. 그렇게 시작한 작사일은 꽤 오랜 기간 기존의 직장 생활과 병행했다. 생계형 직장인에겐 당연한 일. 그렇게 약 8년간 투잡을 뛰다 저작권료가 월급을 넘어선 시점에 완전히 작사가로 전직했다.

김이나 작사가에게 글짓기 소질에 대해 묻자 그간 쌓은 내공을 자랑하며 일장연설을 할 거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글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이나 작사가 스스로 생각하는 재능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 상황이 어떨 것 같다고 상상해 보는 것이란다. 작사가는 가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기에 다양한 자아로 글을 써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사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이해’다. 양비론자라는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개인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는 다양한 자아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김이나 작사가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내 음원저작권료 수입 1위(2015), 가온차트 K-POP 어워드 3년 연속 올해의 작사가상(2012~2014)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사가 김이나는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동방신기, 엑소, 샤이니, 브라운아이드걸스, 아이유, 조용필, 이선희 등 아이돌부터 중견 뮤지션까지 세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300여곡의 노랫말을 썼다.

“늘 ‘Why(왜)’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작사를 하려면 내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화자(캐릭터 혹은 주인공)의 심정과 상황을 이해해서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하거든요. 성시경의 노래‘10월에 눈이 내리면’을 예로 든다면 왜 10월에 눈이 왔으면 좋겠는지, 왜 화자는 눈이 빨리 오길 바라는지, 10월에 눈이 온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등 화자의 심리에 계속 의문을 가지고 화자를 이해하는 작업을 해야하죠.”

작사의 세계는 결코 쉽지 않다. 끊임없이 다양한 자아와 소통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화자의 행위나 결과에 대한 합리화 작업도 해야 한다. 그리고 상업 작사가로서 살아남으려면 숱한 ‘까임’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끈기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작사가인 게 너무 좋단다. 영화나 드라마, 미술작품들과 달리 노래가 매혹적인 건 지나간 추억과 맞물려 내 삶 안에 배경음악(BGM)처럼 깔려서 함께 가기 때문.

“오랜만에 추억 속 음악을 들었는데 이상한 감정이 드는 건 내 시간을 음악이 잡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음악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의 삶 속 BGM에 내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멋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전 이 일이 너무 좋아요.”

김이나 작사가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 작가도 꿈꿔보고, 라디오 DJ에도 매력을 느낀다. 또 다른 도전에선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사진=고이란 기자 photo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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