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심각하지만 웃기고, 웃기지만 심각한

입력 2016-09-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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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설왕설래를 몇 해 전 KBS 개그콘서트(개콘)의 인기 코너였던 ‘비상대책회의’ 식으로 패러디해 보고 싶어졌다. 심각한 사안인데도 발뺌과 설명(변명)이 너무 웃기고, 웃기지만 (의혹들이) 너무 심각한 사안이어서.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비상시국이라고 했으니까.

테러, 인질, 납치, 유괴 등 대형 사건·사고의 해결을 위해 열린 ‘군·경 합동 비상대책회의’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주 요소는 어떤 대책에든 안 된다고 고개를 내젓는 경찰청장 역 김원효의 대사와 말투였다. 큰 키에 얼굴이 길쭉하고 턱은 뾰족하며 시원한 이마에 눈은 작고 머리가 살짝 벗겨진 김원효가 콧수염 아래 얇은 입술 사이로 온갖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경상도 사투리로 따발총 쏘듯 숨 막힐 정도로 길고 빠르게 주워섬기면서 “안 돼~~~!”라고 소리치면 폭소, 하다못해 씁쓰레한 미소라도 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어쨌든 미르와 K스포츠, 두 재단의 전말(顚末)에 대한 보도를 ‘비상대책회의’의 김원효 식으로 풀어 보면 다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다.

뭐? 한류 전파와, 스포츠 인재양성과 국제 교류협력을 위한 재단을 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안 돼~~~! 한두 푼 갖고 안 될 텐데 그 돈이 어디 있어? 시간도 없잖아.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한다고? 왜? 그분이 뒤에 있다고? 알았어. 하라면 해야지. 그래 전화 한번 하면 될 거 아니야? 좋은 뜻으로 재단을 만들겠다는 분이 있으니 기업들 협조가 필요하다고 하면 되겠지? 물론 강제는 아니라고 해야지. 정말로 강제는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전화를 하면 자기네들끼리 회의니 뭐니 야단법석이겠네. “비슷한 재단과 단체가 있는데 또 무슨 한류에 스포츠재단이냐?”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라면서 이렇게 돈 막 쓰게 하는 게 경제정책이냐?” “준조세 없애겠다더니 이건 준조세가 아니냐?” 모여서 욕부터 하겠네. 안 돼~~~, 난 못해! 그래도 기업들이 못 들은 척은 못 할 거라고? 기다렸다는 듯 덥석 돈 싸갖고 오는 데도 있을 거라고? 자기네 급한 일 해결하려고 말이지?

알았어. 그런데 얼마나 걷어야 돼? 얼마라고? 안 돼~~~! 70억 원도 아니고 700억 원이라니, 그게 애 이름이냐? 필요한 만큼만 걷자고. 말하기도 쉽고, 반발도 덜할 거 아니냐. 뭐? 30년 전 전두환 때 일해재단도 600억 원을 거뒀다고? 물가인상, 화폐가치 감안하면 그 이상 걷어도 된다고? 지금 많이 거둬야 훗날 이사장 활동비 판공비 정보비 등 운영자금에 여유가 있게 된다고? 영수증 덜 챙겨도 되는 그런 돈이 많아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알았어. 그렇게 해 보자고. 그런데 말이지, 나는 아직도 걱정이야. 소문날 걸 생각하면 ‘안 돼~~~!’ 소리치고 싶어. 이런 일 당하면 검찰이나 정보 쪽, 그리고 언론에 먼저 나불대는 자들이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막아? 자신 있어? 특검도 있잖아? 특검이 혹시라도 우리 발뒤꿈치 물면 어떻게 할래? 특검이 나대면 사퇴시키면 된다고? 어떻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언론은? 언론 대책은 별도로 만들고 있지? 언론이 재단 설립 과정을 ‘의혹투성이’라고 써대기 시작하면 감당이 불감당일 거야. ‘모른다’고 하자고? 기업들이 효율적인 한류 홍보와 스포츠 교류를 통한 국위 선양에 나선 걸로 안다, 우리는 그 정도만 보고받았다고 하자는 말이지? 하긴 그 수밖에 없겠네. 알았어. 그렇게 해 보자고. 그런데 말이지, 나는 아직도 걱정이야. 백약이 무효일걸. 국감으로도 넘어가고…. 그러니까 정공법으로 가자고? ‘대응할 가치도, 해명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맞받아치자고? 그러다 보면 다른 이슈로 관심이 돌아간단 말이지? 뭐가 좋을지는 그때 가서 결정해도 된다는 말이군, 알았어. ‘안 돼~~~!’ 하기도 지쳤거든.

참, 재단 이름은 뭐로 할 건가? 이사장 인선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미르는 뜻이 뭔데? 용, 드래곤의 우리말이라고? 한류 홍보에 용 앞세우는 거.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데… 용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하고 중국뿐이잖아. 서양에서는 사악하고 흉포한 동물로 취급한다고. 용에는 자애로움이 없어. 사랑도 없고. 오직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것만 같아. 아래는 안 보고 위로만 가려는 것 같은 모습도 싫어. K스포츠도 그래. K팝이라는 게 성공하니 K드라마, K뷰티, K쿠킹…, 아무 데나 K를 갖다 붙이는 거, 이거 상상력 부족이야. 이름은 못 바꾼다고? 이미 정해진 거라고? 그럼 할 수 없지. 우리가 시작한 것도 아닌데, 아무 이름이면 어때. 자기 생각대로 하라고 하지 뭐.

이사장은 누가 한다고? 그런 분은 자기 역할이 얼굴마담이나 하는 거라면 금세 그만둘 텐데? 다른 사람도 많다고? 이사장 시키겠다면 줄 서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그중에서 ‘체육’과 조금이라도 관계 있는 사람 고르면 된다고? 그렇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를 시켜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래 그게 다 잘못되면 집중포화 맞기 딱 좋은 건데….

그렇지만 하라면 해야겠지. 우리가 언제 소신으로 살았냐. SSKK 알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깐다’야. 그렇게 살아야지. 그게 내 소신이야. 하지만 한마디만 진짜 내 소신대로 말할 수 있다면 이거야. ‘안 돼~~~~~~!’

방영 시간 9분인 ‘비상대책회의’에서 김원효는 무려 2200여 글자, 원고지 11장 분량으로 이 글의 길이와 거의 맞먹는 분량의 대사를 그렇게 단번에 쏘아댔다고 한다. 웃음도 주면서. 길기만 한 이 글은 웃음은커녕 짜증만 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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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회’의 속사포 입담꾼 김원효.

임철순 기자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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