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평론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진실된 언어와 진정성 있는 자세를 견지해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가슴에 신뢰받는 방송인으로 남아 있는 월터 크롱카이트. 그를 소환한 것은 막말의 전쟁터로 변해버린 케이블TV의 종합편성 채널, 보도전문 채널, 지상파 방송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의 상당수 앵커와 진행자, 전문가 방송인들이다.
공정성과 객관성, 전문성을 담보해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할 앵커와 진행자는 편파성과 자극성, 선정성을 부추기는 선봉장일 뿐이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배를 고정해주는 닻(앵커)처럼 부동심으로 뉴스 프로그램을 이끄는 앵커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뛰어난 언어 구사력과 전문지식, 위기 대처 능력으로 무장해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진행자도 매우 드물다.
정치평론가, 시사평론가, 문화평론가, 변호사,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가슴에 달고 출연하는 전문가 방송인에게선 전문성은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 전문가 방송인은 심도 있는 지식과 정보, 뛰어난 분석력과 통찰력으로 사건과 이슈, 인물, 트렌드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사안에 대해 숨겨진 의미를 해석해낼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부재하다. 전문가 방송인의 유일한 무기는 비하와 편견에 가득 찬 막말과 고성뿐이다.
오죽했으면 일부 전문가 방송인과 앵커, 진행자를 향해 ‘인터넷 읽어주는 사람’ ‘막장 배틀의 괴물’ ‘사람의 아픔마저 물어뜯는 하이에나’ ‘가십과 스캔들 유포자’라는 섬뜩한 비판까지 쏟아질까.
하지만 방송사나 문제의 방송인들은 이러한 비판과 지적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막말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목소리의 데시벨이 올라갈수록, 자극성과 폭력성의 강도가 셀수록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대중의 정서와 인식에 미치는 폐해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대중의 눈길을 끌면 그만이다.
남녀노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TV의 화면을 점령하고 있는 일부 방송인의 문제는 더는 방기해선 안 될 심각한 상황이다. 진실과 사실이 거세된 그들의 자극적인 막말은 대중의 언어가 되고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그들의 편향되고 왜곡된 시선이 대중의 인식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 방송인들이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양질의 방송인들을 내몰아 방송의 질을 추락시키고,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할 대중의 권리마저 박탈하고 있다.
자극적인 막말로 시청률을 올렸다고 좋아하는 앵커와 진행자, 그리고 인터넷 읽는 수준도 넘지 못하는 얕은 지식으로 고성만 질러대는 전문가 방송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문제 방송인의 병폐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 담겨 있는 두 권의 책을. 외부 찬사나 보상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며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의 가치를 일깨운 데이비드 즈와이그의 ‘인비저블’과 자기 과잉의 시대에 외적 찬사와 성공을 삶의 중요한 척도로 여기는 ‘빅 미(big me)’에서 벗어나 겸손, 진실 등 인간의 진정한 의미에 정진하는 ‘리틀 미(little me)’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이다.
그리고 생각하기 바란다. 월터 크롱카이트가 왜 미국인에게 신뢰받는 방송인으로 남아 있는지를. 수많은 사람에게 ‘괴물’ ‘사이비 전문가’로 각인된 방송인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폐해가 엄청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