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웅 언론인,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시사저널·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 역임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늦어도 이달 중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에서 동시 개봉될 미 다큐멘터리 영화 ‘지휘통제’(Command and Control)에 등장하는 한 장면입니다. 얼핏 픽션으로 들릴 법한 핵폭탄의 습지 유실이 실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데 진절머리를 치게 됩니다. 묻힌 폭탄의 폭발력은 과거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267배에 달하는 4메가톤. 터질 경우 노스캐롤라이나 주 전역은 물론이고 뉴욕까지 초토화되리라는 것이 최근 뉴스위크의 분석입니다.
미국이 현재 보유 중인 핵탄두는 7000여 기. 이 가운데 1000기 이상의 핵탄 하나하나가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 유실과 유사한 사건·사고의 기록이 꼬리처럼 달려 있다는 사실은 끔직한 통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55년 전 노스캐롤라이나 상공의 핵탄두 유실을 이달의 ‘세계는 지금’ 토픽으로 제가 선뜻 올리는 데는 나름의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형 참사나 테러만이 뉴스의 촉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핵 관리의 부실이나 소홀, 또 거기서 비롯될 핵폭탄 사고의 위험성과 그 항존(恒存)이야말로 핵전쟁 그 자체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치명적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 핵을 가지고 지금도 계속 불장난을 되풀이하는 북한을 겨냥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최고의 핵 선진국 미국마저 핵 관리 소홀과 미비로 이렇듯 골치를 앓거늘, 핵에 관한 한 후진국 중의 후진국인 북한이 이런 가공(可恐)의 위험을 과연 어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설령 이도저도 다 귀에 안 들어오더라도, 불장난이 심한 어린아이들의 경우 밤에 어찌 된다는 우리의 너무도 자명한 속담 하나만이라도 북한에 상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이 보유 중인 핵탄두는 어느 규모인가?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유력 군사전문 싱크탱크인 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 소장 앤드루 F. 크레피네비치가 최근에 쓴 논문 ‘아마겟돈을 거듭 떠올리며’(Rethinking Armageddon)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3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됩니다(아마겟돈은 요한계시록 16:16에 나오는 세계의 종말에 선과 악이 싸우는 최후의 결전. 핵전쟁의 발발로 인한 지구 최후의 날을 의미.).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5일, 2년 전 4~8기의 핵탄두를 소유했던 북한이 지난해 말 16기의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보도, 이런 추세라면 2020년 북한의 핵탄두 보유 기수는 100기에 이를 것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추정하고 있습니다. 핵탄두 7000기 가운데 1000기가 유실 또는 관리 소홀이라는 위기의 전력을 북한에 그대로 대입할 경우, 북한이 보유할 100기의 핵탄두 가운데 7분의 1에 해당하는 14~15기는 일단 전력을 지닌 핵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 계산은 핵에 관한 한 후진국 가운데 후진국이라는 북한의 열악한 입지를 전혀 고려대상에 넣지 않은 통계인 만큼, 이를 다 감안할 경우 북한이 4년 후 지닐 100여 기의 핵탄두 가운데 20기 이상은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를, 북한 정권의 와해를 훨씬 웃도는 동북아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북한이 지금 서두르는 핵무기의 개발은 핵탄두의 소형화(miniaturized)에 쏠려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의 발사를 통해 미군에 배치될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를 무력화시킨 북한이 그 여세를 몰아 9월 4~5일 세계적 이목이 쏠린 항저우(杭州) G20정상회의의 개최 일자를 일부러 골라 세 발의 미사일을 일본 경제수역을 향해 쏘아붙인 것도 따지고 보면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했음을 세계에 알리려는 고지행위였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하더라도 핵폭탄 사고의 위험과 그 빈도가 함께 소형화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을 쓴 전 하버드대 교수 새뮤얼 헌팅턴이 그 책에서 가장 우려한 것이 바로 소형화된 핵무기입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 소형 핵무기가 테러집단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를 문명의 충돌이 야기할 최악의 상황으로 진단했습니다.
지금 북한 내부의 테러집단을 거론하기엔 다소 무리겠지만, 최근의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김정은은 8월 초 교육상 이영진과 황민 전 농업상을 평양 소재 군관학교 연병장에서 고사총(항공기 공격용 기관총)으로 총살한 것을 비롯,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부장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군 고위 장성과 관리 등 50명을 공개 처형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제는 신변의 위협을 사전에 감지한 휘하 장성 가운데 몇몇이 소형화된 핵무기를 대항수단으로 김정은과 힘겨루기를 벌일 경우입니다. 이럴 경우 핵폭탄 사고의 위험은 노스캐롤라이나 상공의 유실이나 관리 소홀 차원을 훌쩍 넘어서게 됩니다.
북한의 핵폭탄 사고 위험은 또 지금의 미 대선 정국과도 유관합니다. 클린턴-트럼프 대결국면이 대선일자(11월 8일)를 오늘 기준 두 달도 채 안 남긴 시점임에도 아직껏 시소게임의 연속으로 나타난 걸로 미뤄 트럼프가 굳이 당선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럴 경우 한국이나 일본의 핵무장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 됩니다. 북한의 핵 도발을 견제하기 위해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차제에 우리도 핵을 갖자는 한국 내 일부 보수집단에 핵무장을 공언한 미 대통령 이상 가는 보증수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의 핵 개발이 공인될 경우 지금의 남북 대결은 결국 핵 대결과 핵무기의 양산으로, 결과적으로는 핵폭탄 사고의 점증으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정작 북한이 지금 직면해 있는 위기는 이런 핵폭탄 사고의 위험에 있지 않습니다. 북한의 세습 정권에 3대째 계속 우성인자로 나타나 있는, 거의 정신질환에 가까운 폭군의 유습(遺習)과 가력(家歷)이 바로 그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논문 ‘아마겟돈을 거듭 떠올리며’를 남긴 미 전략예산평가센터의 편집장 크레피네비치는 논문 도입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세 인물의 명언 한 토막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영국 전 총리 윈스턴 처칠로, 그가 2차 세계대전 후 미소(美蘇) 냉전체제를 겪으며 체득한 핵 관련 명언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핵 저지력을 갖춘들 막다른 국면에 처한 히틀러 같은 폭군이나 정신병자를 당해낼 수는 없다.” 히틀러마저 갖지 못한 그 핵이 이제 김정은의 수중에 들어간 이상, 그 피해는 가히 아마겟돈에 준하는 상황임을 논문은 이렇게 에둘러 예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용은 김정은의 선대 김정일의 폭언입니다. “내가 패배할 경우, 세계를 도륙 내겠다.” 이 단말마적 저주로, 이 역시 아마겟돈의 도래가 필연적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논문은 또 김정은의 핵 안목이 선대 김정일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도 함께 다뤄, 서구의 설득에 대량살상무기(WMD)를 선뜻 포기한 리비아 국가평의회 의장 가다피를 김정은이 맹박, “리비아는 끝까지 핵무기를 지녀야 했다”는 2011년 3월 24일자 뉴욕타임스 보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인용은 옥스퍼드대 정치학 교수를 역임한 로버트 오닐 박사의 발언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또 그 작태의 규모나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개탄으로, 이 역시 지금의 북한 김정은 체제를 염두에 둔 의도적 인용으로 제게는 읽힙니다. 지구는 결국 아마겟돈으로 치닫고 마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