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식물상태 한진해운·수동적인 법원,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입력 2016-09-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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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경 김창준 변호사가 말하는 한진해운 물류사태 해법

▲김창준 변호사가 8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경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전날 ‘한진해운 물류대란 법적 쟁점 긴급 좌담회’를 끝내고 참담한 심정에 과음했다고 멋쩍게 이야기했다.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최근 물류대란의 ‘책임 떠넘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금융당국, 돈의 논리 앞세워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몰아

예측준비도 못한 물류대란, 수출 중심 경제 생태계 흔들

8일 열린 구조조정 청문회는 책임 떠넘기기의 향연이었다. 정부 관계자 누구도 세계 7위 해운사의 도산과 그로 인한 물류 피해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창준 법무법인 세경 변호사는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25년여간의 변호사 인생 대부분을 국내·외 해양업체들과 함께한 해상 전문 변호사다. 한국해법학회 고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인터뷰 전날인 6일에도 한국해법학회에서 긴급히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토론했다.

한진해운과도 사건 대리인 또는 상대방의 대리인으로 자주 접촉했던 그는 최근 사태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로지스틱스, STX 등 구조조정 절차를 밟았던 국내 대부분 선박업체 사건을 경험했지만 한진해운은 당시 케이스와 결과 규모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오직 ‘돈의 논리’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아넣은 금융당국이 이번 물류대란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청문회의 화두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김 변호사를 8일 서울 종로구 세경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의 피해 규모가 매일 숫자를 바꿔 커지고 있다. 그런데 감이 잘 안 온다. 몇 천억 또는 조 단위 피해라고 하는데 실제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

“수출 중심의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정도라고 본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도 해상에 발이 묶여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들은 협상력도 강하고 자본도 뒷받침되니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화주를 모아 중계 역할을 맡은 포워더(운송주선인) 등 중소기업이 문제다. 이번 물류대란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면 그들은 존폐 위기에 놓인다. 운송업계 중소기업이 누군가. 우리 수출 생태계에서 보이지 않지만 없어선 안 되는 그런 존재다. 물류대란의 여파로 이들이 큰 피해를 본다면 앞으로 우리 수출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평가가 더 거칠다. 법무법인 세경은 고객의 70%가 외국 선사다. 이들은 한진해운의 도산과 물류 피해가 근 50년간 벌어진 해운 사고 가운데 가장 참담한 사고로 기억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해운업이 강한 영국, 일본 등이었다면 이처럼 대란·참사로 비화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의미다.

△8일에 이어 9일도 구조조정 청문회가 열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물류대란 대비를 위해) 한진해운에 운항정보나 화주정보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며 법정관리 직전까지 화물을 실은 한진해운의 부도덕성을 꾸짖었다. 자구 의지가 부족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할 만큼 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같은 일이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우선 한진해운 같은 기업이 법정관리까지 가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됐더라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외국 선사들과 교섭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법정관리 단계 기업 업무는 우선 법원이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법원은 수동적이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먼저 제공할 때만 가부를 판단해 적용한다. 이미 식물 상태인 한진해운과 수동적인 법원 사이에서 물류대란을 해결할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자연재난 외에도 사회재난이 명시돼 있다. 교통·금융 등 국가 기반 체계 미비로 인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물류대란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국가적 재난으로까지 볼 수 있고, 따라서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황에서 사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조양호 회장의 사재 출연이야 그럴 수 있다 친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는다는 발상은 주주들에게 배임죄로 고소당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방금 말씀 대로 정부가 이번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뭘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조치는 무엇인가?

“정부가 당장 협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정부가 나서라는 것은 거점항구(세이프존)를 지정하는 수준의 간접적 조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진해운 사태의 1차 관리를 담당했던 금융당국과 현 해양수산부 모두 국제도산법에 대한 이해 등 감각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해수부에서 거점항구로 지정하자고 밝힌 곳 중 함부르크도 있는데 그곳은 우리나라 법적 절차를 승인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자산이 동결될 수 있다. 거점항구 하역에도 비용이 든다. 항로 이탈(Deviation)로 화물이나 선박이 멸실될 경우 국가 배상 책임도 발생할 수 있다. 한진해운이 미국 법원에 신청한 ‘선박 압류 금지 요청(스테이오더)’도 무용지물이거나 부작용마저 초래할 수 있다. 미국 법원이 스테이오더를 거부하면 싱가포르·독일 등도 이를 불허할 가능성이 크다. 자연히 미국·싱가포르 등에 세이프존을 지정해 하역 작업을 하겠다는 정부의 비상 대책도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부, 거점항구 지정 간접조치 넘어 당장 협상 주체로

과거채권 정리미래채권 보장, 해외 선사에 신뢰 사인 보내야

△정부가 협상의 주체로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뭐가 달라지나?

“우선 과거 연계채권에 대한 변제 요구에 선을 그을 수 있다. 채권은 회생절차 전과 후로 성격이 나뉜다. 회생절차 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 청구권(회생채권)은 디스카운트가 되고 10년 분할로 상환할 수 있다. 사실상 휴지 조각이다. 반면 회생절차의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기 위해 인정된 청구권(공익채권)은 미래채권이다. 해외 선사들은 과거채권과 미래채권 모두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과 만나 미래채권을 확실히 보장하는 대신 과거채권은 정리하자는 식으로 노선 정리를 할 수 있다. 식물 상태인 한진해운이 협상 테이블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진해운과 거래하는 미국롱비치터미널(TTI) 등은 모두 한진해운만큼 대기업이다. 돈뿐만 아닌 국제적 신뢰를 기반으로 영업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정부가 이들과 하역업체 등 협력사들을 만나 일부라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신뢰를 주는 협상을 주도하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 등 주력국가 협력사와 논의가 잘 이뤄진다면 다른 협력사와의 관계도 자동으로 풀릴 것이다.

△삼성로지스틱스, STX, 대한해운, 팬오션 등 국내 선박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직·간접적으로 담당해 왔는데 과거와 비교해 한진해운 사태는 어떻게 다른가?

“STX나 대한해운 등은 부정기선사다. 선적지·양하지·화주가 하나다. 법정관리에 가더라도 협상해야 할 대상이 딱 하나여서 잡음이 없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선적지·양하지·화주가 컨테이너별로 다르다. 화주만 수만 명에 달하는 상황이라 물류대란으로 확대된 것이다. 정부가 과거 선박업체의 구조조정 경험에 비춰 한진해운 케이스도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애초에 해양수산부에서 관장했어야 할 사안이 금융위원회 등 경제 부처에서 주로 다뤄진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이다. 자구안이 없으면 추가 지원이 어렵다는 단순한 ‘돈의 논리’로 따져선 안 될 사안이었다. 최은영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부실·부도덕한 경영책임은 따로 물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해운산업이 불경기다. 한진해운은 물론이고 글로벌 1위 기업도 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망하더라도 이 정도의 혼란은 애초에 발생해선 안 되는 일이다. 누군가 빨리 해결해 줘야 한다.

△단순히 ‘돈의 논리’로 접근한 데서 한진해운 사태가 확대됐다고 했다. 실제로 악화된 국제 여론이 현대상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연한 추론이다. 회사 하나가 망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국가적인 신용이 걸렸다. 우선 조양호 회장이 출연한 400억 원을 최대한 전략적으로 활용해 협상자들을 달래야 한다. 돈이 아닌 신뢰로 하는 일이다. 물류대란에 관여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 사항과 불만 등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파악하고 수용해야만 ‘수출 강국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 정도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할 만한 역량이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어떤 국가 광고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부디 전화위복의 사례로 남기를 바란다.

정다운 기자 gamja@

◇김창준 변호사는,, 해상운송 송사 전문 변호사

1981년 제11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첫 회사를 지금의 법무법인 광장으로 잡았다. 당시 이름은 한미합동법률사무소였다. 로펌 한미를 세운 이태희 변호사는 한진그룹 창업주의 사위다. 부산 출신인 김 변호사는 자연스레 회사로 들어오는 해상·운송 관련 송사를 맡으며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1993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한국수출보험공사 고문변호사를 역임했고 2008년 한국해법학회 부회장, 2015년 제5대 한국보험법학회 회장을 맡았다. 현재는 한국해법학회 고문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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