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협력 실패’ 반복하는 한국 사회, 황금사과의 교훈

입력 2016-09-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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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의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와 아테네가 10년 동안 완전히 초토화될 때까지 싸운 이야기이다. 이 엄청난 전쟁의 시작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던진 ‘황금사과’ 한 알을 두고 일어났다. 신화란 인간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역사는 갈등의 역사이며 협력 실패의 반복사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고 갈등의 끝에 비극이 있었다. ‘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사회과학은 늘 협력의 당위성을 규범적으로 궁극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조직론에서는 리더십을 통해, 전략론에서는 생태계와 상생이 대표적이다. 경쟁과 갈등의 제로 섬(Zero sum)의 조직을 협력과 시너지의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으로 바꾼 조직만이 지속가능한 혁신과 성장이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자. 국회를 두고 일어나는 끊임 없는 편 가르기는 트로이전쟁의 황금사과처럼 갈등 소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는 늘 제로섬의 국내 문제이고 포지티브 섬이 가능한 해외 문제는 관심이 낮다. 외부 세상은 격변하고 있는데 해외환경 변화가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글로벌 이슈로 심층 분석하고 있는 기사는 별로 없다. 아마 OECD국가 중 우리나라만큼 해외 이슈 심층기사가 없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이 심각한 사회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칭찬보다는 꾸중하는 것에 익숙하다. 국회의원의 역할이 꾸중할 재료 찾기인 듯하다. 늘 공무원과 기업인을 불러 놓고 꾸지람하고 고함치는 것만 뉴스에 나온다. 이들은 불공정, 불평등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상호 함께 발전하는 공영(co-prosperity)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기업가를 칭찬하는 기사는 없고 세금추징 기사만 나온다. 참으로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재미없는 세상이다. 기업가의 의욕이 없으니 사업이 확장되고 혁신되기 어렵다.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피크 시 600만 개의 제조업체 일자리는 이제 450만 개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생들은 50번쯤 원서내고 아무 소식이 없는 이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업가형 생태계가 성장하기 어렵다.

여기에 편승해 국민은 트로이와 아테네처럼 싸우고 헐뜯고 있다. 구한말 당시 우리 국민들은 격변하는 일본, 러시아 등 국제 환경은 접어두고, 국내 문제만 두고 그렇게 싸우다 역사의 비극이 만들어졌다. 세계는 저성장 경제로 접어들고 있다. 각국은 자국민 보호에 주력할 것이고, 그런 만큼 협력의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결국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선이 끝나고 나면 1990년대 미국 주도의 미·일 간 통상마찰처럼, 점차 우리나라에도 한·미 간 통상 이슈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철강의 덤핑관세도 한 예이다. 이때야말로 해외 문제를 두고 협력의 여지를 찾아내고, ‘솔루션(solution)’을 주는 국가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집단도 더욱 심각해져가는 해외 이슈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여 안타깝다. 특사나 밀사를 보내 다양하게 협상하는 모습도 없다. 해외 이슈 전문가 생태계를 찾아보거나 전문가를 키우자고 하는 지도자도 없다. 국내에서만 큰소리 치고 외국에는 제대로 된 협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 못한 집단들이다.

우리 정치는 모두 다 민생을 이야기하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국내 감성적 이슈에만 매몰되어 있다. ‘황금사과’에만 관심이 있고, 트로이의 멸망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은 관리자(manager)이지 지도자(leader)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는 1950년대 중국, 러시아와 미국, 일본의 이념 전쟁이 재현되는 것 같다. 이때야말로 성동격서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협력’이라는 단어가 아쉽기만 하다. 역사는 순환한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재발(recurrence)이다. 북한 이슈, 중국 이슈, 미국 이슈, 일본 이슈와 같은 엄청난 해외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국내 이슈로만 싸우고 있다. 이제 민생정부의 시대는 가고 외교정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어디 한반도의 현안 문제를 풀어줄 외교와 국제 협상의 전문가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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