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식탁에서 얼굴 보이기

입력 2016-09-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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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아이는 비 온 다음 날 오이처럼 자라는 아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자라는 아이 둘이 있다. 하나는 남의 아이이고, 또 하나는 책 속의 아이다. 그래서 책 속에 남의 아이 크듯 한다는 옛말도 있다. 그렇게 자란 큰아이가 군에 간 다음 우리 집 4인용 식탁 한 자리가 오래도록 비었다.

내 아이가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고등학생이 내 아들이거나 내 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아이가 대학생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들 같은 학생으로 보이고, 아들 같은 젊은이로 보일 뿐 내 아이와 그 아이들이 완전하게 하나로 겹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아이가 군인일 때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군인이 내 아이처럼 보인다. 군복을 입은 그 아이가, 아니, 내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아내도 길을 가다가 군인을 보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눈물을 짓는다. 저 아이들의 모습이 저토록 씩씩한데 왜 그러냐고 해도 한참 바라보다 말없이 눈가의 눈물을 찍어낸다.

아마 아내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예전에 불렀던 군가대로, 사나이 한 목숨 바쳐 그 아이들이 이 땅을 지키고 우리의 단잠을 지킨다면 그런 그 아들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지키는 것은 또 이 땅의 어머니들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 이 땅의 부모들 마음속에 가장 안타까운 자리에 있는 자식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내 아이가 제대를 해도 길에서 군인을 보면 그 아이들이 여전히 내 아이 같아 보인다. 운전을 할 때 한적한 외곽도로에서 사병들을 태우고 가는 트럭을 만나도 이 땅의 엄마들은 그 트럭을 함부로 앞지르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트럭을 오래 같은 속도로 뒤따라가며 눈물짓는 엄마들도 있다. 그 눈물은 그냥 안돼 보여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남의 귀한 집 자식들, 모두 무사하게 군 생활 마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염원의 기도와 같은 눈물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품에 돌아가 아침저녁 식탁에 함께 앉는다는 것. 내가 아직 소년이고 학생이었던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늘 강조했던 것이 바로 식탁에서 얼굴 보이기였다. 밖에 나가서 행한 일이 바르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면 집에 들어와 어른 얼굴 보기를 피한다는 말씀이었다. 우리 형제들도 자라는 동안 그런 날이 많았다. 밖에 나가 싸움을 해 얼굴에 멍이 들었거나 되잖은 작폐 후 돌아왔을 때 앞마당으로 바로 들어서지 못하고 뒤란을 돌아 슬그머니 골방을 통해 제 방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 이따금 잔소리처럼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 외출할 때 반드시 알리고 돌아와선 반드시 찾아뵘)’을 듣는 아이 역시 어른이 되면 자기 아이들에게 아빠는 너처럼 그러지 않았다는 식으로 ‘출필고반필면’을 말할지 모른다. 어릴 때 내가 떳떳하지 못했을 때는 그것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것이야말로 가족 간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로, 가족 전체의 안전을 지켜나가게 한 가족 간의 관심이자, 그 관심의 힘이 아닌가 싶다.

오늘 길에서 보았던 내 자식 같은 군인들 모두 무사하게 군 생활을 마치고 저마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식탁으로 안전하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꼭 그러길 바란다. 그 속에 그들도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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