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산기지 제품 판매, 수출로 집계 안돼… “대기업과의 하도급거래 문제 해결해야”
무선통신장비 중견기업인 A사의 공장에는 이삿짐 꾸러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본사 생산설비를 베트남으로 옮기기 위한 정리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A사는 본사 공장 생산설비를 베트남에 50%가량 이전한 뒤, 점차 모든 설비를 옮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말부터 본사 공장부지 매각에 나서는 등 해외 이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중견 LED조명 부품업체인 B사 역시 해외 이전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생산 물량의 대부분을 매입하는 대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B사 역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B사의 생산지 비중은 중국, 베트남이 국내를 압도하고 있다. 연말에는 국내 물량 10%가량을 추가적으로 해외 이전할 계획이다.
B사 임원은 “거래 대기업에서 당장 해외로 생산설비를 옮기라고 성화”라면서 “대기업들이 다 해외로 떠나는 마당에 협력사들이 국내에서 많은 물량을 소화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견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에는 값싼 인건비 때문에 해외로 나갔다면, 요즘은 거래 대기업의 이전 요구와 국내의 과도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짐을 싼다. 해외 생산기지에서 생산·판매한 제품은 수출로 집계되지 않는 만큼, 중견기업의 한국 탈출은 결국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은 “대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 이동 초기에는 원자재와 중간재 등을 국내에서 조달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협력사들과 함께 움직여 현지에서 생산한 부품을 받는다”면서 “중견업체들은 가장 큰 고객인 대기업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해외 이전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대기업과 중소ㆍ중견기업 간 전속거래, 하도급거래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견기업 해외 이전에 따른 수출 감소를 다른 영역에서 보전하는 해법도 요구된다. 김 원장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전문 무역ㆍ종합상사 등을 통해 중견기업 수출을 독려하고, 동남아나 중동 시장과 같은 새로운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며 “대통령 해외 순방 시 수출과 연계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발 빠르게 진행하는 등 정부가 전방위적 수출지원 총력체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