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회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장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8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선진국의 통화정책 결정, 미국 대선과정 등에서 거론되는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적 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자국시장 보호 차원에서 중국은 물론 한국 제품에 덤핑 관세를 적용한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중국산 철강이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 쏟아진다면 철강 업계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는 소리도 한다. 미국은 물론 인도의 반덤핑 관세 움직임으로 우리나라 주요 수출업체 3곳 중 2곳이 보호무역주의를 체감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강, 화학을 포함한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미국이 향후 더욱 강도 높은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 보호무역주의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2001년 부시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철강 제품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바 있다.
한창회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장은 이와 관련해 “미국이나 인도가 우리나라 제품에 대해 반덤핑·상계관세를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하면서도 “이런 움직임은 사실상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어온 현상으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입규제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한 조치를 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년과 달리 최근 들어 미국에서 무역규제 조치들이 잦아지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 신규 수입규제(조사 개시 포함)가 4건이었다면, 올해는 지난 7월까지 이미 4건이 발생했다. 이 중 6건이 철강제품에 집중돼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철강제품 수입규제 강화는 세계적인 공급 과잉으로 미국 내 저가 수입산이 범람, 경쟁력이 약화된 미국 철강기업들이 보호주의 조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브렉시트, 미국 대선 후보들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대 발언 등이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본격화됐다고 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본다. 대부분 철강, 화학제품에 집중돼 있을 뿐 아니라, 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이번에도 새정부를 꾸린 후 더욱 강도 높은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지.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신(新) 통상정책을 발표하면서 수출국 덤핑, 보조금 지급,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무역행위에 대한 제재를 천명했듯이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모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 입장을 보인다는 점, 특히 공화당 정강에 공정무역에 대해 비협조적인 교역국가에 반덤핑,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향후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조치(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재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반덤핑 관세를 다른 업종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그 같은 움직임을 예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례로 정부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한 미국의 철강협회와 같이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업종(협회)에서는 이 같은 조사를 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미국뿐 아니다. 중국도 지난 7월 한국산 전기강판에 대해 37%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은데.
“사실상 중국의 전기강판에 대한 판정은 보호무역주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 배치 결정으로 중국이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형태로 무역 보복에 나선 것이라 하는데, 이 역시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기강판에 대한 조사는 사드 배치 이전인 지난해 7월에 조사가 시작된 것이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 EU에 대해서도 한국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또 올해 중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조사를 개시한 건수는 현재까지 없다. 게다가 과거 우리 기업 제품에 대해 중국이 모범규준 인증을 주지 않은 것 역시 우리 기업들이 오히려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결과이지, 비과세 장벽을 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미국, 중국 외에도 우리 나라 수출기업에 영향을 미칠 만한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 국가가 있는지.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다. 인도는 수입규제 조치를 강화하는 추세여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실제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대한 수입규제 월간동향’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올해 36개국에서 개시한 총 신규 규제(조사 포함) 건수는 24건이며, 이 중 인도가 무려 6건(철강)으로 가장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철강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이 증가하고 있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을 경우 수입국이 관세인상이나 수입량 제한 등의 규제를 할 수 있는 무역장벽의 하나다.”
△우리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가지고 있는지.
“외교부에서 전담하던 통상정책 관련 업무가 2013년 산업부로 넘어갔다. 다만 일부 업무는 외교부 수입규제 대책반에서 다루고 있다. 즉, 외교부는 통상과 관련해 외국 현지에서 정부측과 접촉, 우리나라 기업의 입장을 어필하고 협의를 하는 등 해외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산업부는 국내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데, 최근 민관 합동 수입규제 협의회를 구성키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부는 기업 차원에서 만나기 어려운 외국 기관들과 의사 소통하고, 접촉을 통해 기업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면 된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그 이상의 레벨에서 움직이는 역할을 하면 될 것 같다.”
△기업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오랜 기간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대응체계가 잘 잡혀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이다. 반덤핑 관련 대응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건당 약 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소기업은 이만한 돈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이럴 때 아예 포기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규제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만약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다면 서면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등 초기 단계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또 평소에 수출 시장의 동향, 규제 조치를 당했을 때 취해야 할 방법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다 보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외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반덤핑 문제와 관련해서 무역협회에도 끊임없이 문의가 들어오고 있으며 해당 건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무역협회에서도 수입규제 포털을 운영하며 7만 개에 달하는 회원사를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에 대한(對韓) 수입규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한국무역협회 콜센터를 통해 대한 수입규제 정보 상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우리 기업들이 이 같은 다양한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이슈&인물] 한창회 실장은...
한창회 실장은 현재 한국무역협회에서 △통상정책 및 협상 △업계공조 및 보완대책 △통상협력 △통상애로 등을 다루는 ‘통상산업포럼’과 비관세방벽 발굴 등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비관세장벽협의회’의 실무 책임과 운영을 맡고 있는 통상 전문가다. 1990년 입사해 무역협회와 26년간 인연을 맺어온 그는 총무부, 하주사무국, 기획조정실, 무역진흥부, 울산지부, 국제물류지원단, 경영지원팀, 해외마케팅 지원본부, 경남지역본부(본부장) 등 다양한 부서를 두루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