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8월 17일 피에르 드 페르마-확률론 창안한 프랑스의 ‘변호사 수학자’

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페르마는 현대 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수학과 확률론을 창안하였으며 미분학과 해석기하학의 기초를 닦았다.” 일본의 저명한 수학자 야노 겐타로(矢野健太郞)가 자신의 저서 ‘위대한 수학자들’에서 말했듯 피에르 드 페르마(1601.8.17~1665.1.12)는 수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업적을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 변호사다.

그는 원래 오를레앙대 법학과를 졸업(1626년)한 법학도였다. 그런데 그리스 수학자 아폴로니오스(BC 262?~BC 200?)의 ‘원뿔곡선론’ 등의 글을 본 뒤 취미로 수학을 배웠고, 그러다가 본격적인 수학자가 됐다.

그는 대단한 증명을 해냈을 때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게 싫다”며 그 내용을 공표하지 않았다. 수학과 관련해 남긴 기록은 지인들과 내기로 문제를 내고 풀기 위해 주고받은 서신,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과 교환한 서신,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책을 보며 여백에 남긴 글 등 소수에 불과하다.

업적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페르마의 원리(빛이 지나는 경로는 두 점을 잇는 경로 중 지나는 시간을 가장 짧게 하는 경로를 택한다)다. 또 페르마의 소정리(p가 소수일 때 {1, …, p-1}의 원소인 모든 a에 대해 a의 {p-1}승=1 mod p를 만족한다)도 제시했는데, 나중에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증명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n이 2보다 큰 정수일 때, 방정식 x의 n승+y의 n승=z의 n승이 성립한다) 역시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에 의해 증명됐다.

페르마는 1631년 툴루즈 청원위원에 선출됐으며 이후 귀족 지위를 표시하기 위해 성에 ‘드(de)’를 넣었다. 34년간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생활을 해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대단한 수학자라는 걸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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