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도핑과 러시아의 리우 올림픽 참가

입력 2016-08-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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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러시아 대사·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도핑 파문에 휩싸인 러시아의 선수들이 리우 올림픽에 참가하기까지의 공방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지난 1년 이상 지속된 이 논란은 올림픽 개막식 직전까지 이어지다가 막판에 러시아가 제출한 선수 명단 중 3분의 2가량에 대해 참가가 허용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나, 스토리 진행 과정은 발단과 전개, 복선, 반전 그리고 결말을 향한 급격한 진행 등 모든 극적 요소를 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극적인 장면들은 현재 진행형인 러시아와 서방 간의 대립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플래시 백 방식으로 되돌아가 보자. 발단은 러시아 육상선수인 율리아 스테파노바와 러시아 도핑 검사관인 그녀의 남편이 2014년 말 독일 텔레비전 방송의 다큐 프로에 나와 러시아 육상계가 조직적으로 도핑을 해 왔으며 육상 선수 거의 모두가 도핑을 하였다고 폭로한 데서 비롯되었다. 러시아 당국은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였으나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조사를 시작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WADA는 러시아 측이 현장의 조사관을 위협하거나 샘플을 사전에 파기하는 등 조사를 방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는 이러한 주장을 부인하고 관계 당국이 조사에 협조하였다고 반박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러시아 내의 반도핑 관련 연구소는 운영을 중단하였고 그 소장은 해임되었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 망명이 스토리 전개상 복선처럼 기능하는데, 그는 나중에 전체 국면에 파국적 영향을 주는 행보를 하게 된다.

WADA는 2015년 11월에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WADA는 조직적인 도핑 혐의를 다 인정하고 국제육상연맹에 러시아 육상 선수 모두에 대해 리우 올림픽을 포함하여 모든 국제 경기 출전을 금지할 것을 건의한다. 국제육상연맹은 이것을 받아들인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조직적인 도핑 혐의는 부인하되 부분적으로는 문제를 시인하면서 러시아의 반도핑 체제 개선을 약속한다. 그리고 국제육상연맹에 재심을 청구하고 도핑과 무관한 선수들이 리우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한다. 이때까지는 육상이 주로 문제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반전이 생겨난다. 해임된 후 미국에 나가 있던 러시아 반도핑 연구소 소장 그레고리 로드첸코프가 2016년 5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달성한 성취가 도핑 덕분임을 폭로한다. 저명한 화학자인 그는 자신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스테로이드와 알코올이 혼합된 도핑용 칵테일을 개발하여 선수들에게 투약했다고 폭로하였다. 그리고 적발을 피하기 위해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했다고 실토하였다.

소치 올림픽은 러시아가 그간 이룩한 국내외적인 성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추진된 프로젝트였고, 여기에서 러시아 선수들은 뛰어난 기량을 보여줌으로써 국가적 기대에 부응한 바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성과가 도핑과 관련이 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로드첸코프의 폭로로 도핑 혐의는 러시아의 육상 선수뿐 아니라 여타 종목으로 확산되었다. WADA는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러시아 당국은 해외로 도피한 사람의 말을 믿을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사이 국제육상연맹은 러시아의 재심 요청을 기각한다. 러시아는 다시 이 건을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한다. 그러나 스포츠중재재판소도 국제육상연맹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정을 내려 러시아 육상 선수 모두가 리우 올림픽에 가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로드첸코프의 폭로가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러시아는 최종 결정 기관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다시 WADA는 로드첸코프의 폭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WADA는 러시아 체육부를 비롯한 정부가 조직적인 도핑에 관여하였다고 판단하고 러시아의 리우 올림픽 참가를 전면 금지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 논란의 초점은 러시아 팀 전체가 리우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느냐에 모아졌다. 이에 러시아는 도핑 문제가 정치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보다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IOC의 유리한 결정을 기대하였다.

IOC는 러시아 육상 선수 전원의 모든 경기 참가 금지를 정한 국제육상연맹과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을 최종 확정하고, 여타 종목에 대해서는 각 경기 연맹이 선수별로 도핑 문제를 확인하여 정할 일이라고 하였다. 육상 이외 여타 종목 결정권을 개별 경기 연맹에 넘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IOC는 모든 러시아 선수가 도핑 의혹의 대상이라는 전제하에 개인별로 확인할 것을 연맹에 주문하였다.

IOC의 결정은 WADA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어서 WADA는 물론 국제 스포츠계로부터 도핑에 대한 타협적 태도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는 동안 러시아는 387명의 엔트리를 제출하고 선수를 리우에 보내 경기 참가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맹별로 선수에 대한 심의가 계속되었는데, 국제역도연맹만이 모든 러시아 선수를 출전 금지했으며 여타 연맹은 선수별로 참가 여부를 결정하였다. 그 결과 271명의 선수가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였고 일정 부분 체면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리우 올림픽에 가지 않기로 하였다. 도핑 논란에 따른 분위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비탈리 무트코 체육장관은 IOC가 초청하지 않아 가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올림픽에는 정상과 체육장관이 참석해 왔음에 비추어 볼 때 체육 강국인 러시아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사안을 보는 시각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극과 극이라는 점이다. 서방에서는 대체로 WADA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나 러시아에서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조사 결과에 서방의 반러시아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고 믿으며 러시아를 음해하려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러한 일이 생겨났다고 본다. 러시아 국민 사이에 정부 당국을 탓하는 여론이 강한 것도 아니다. 사안의 전개 과정이 폭로에서 폭로로 이어지는 등 영화처럼 극적인 점도 이러한 음모론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러시아와 서방 간에는 의심의 골이 깊고 인식의 간극이 크다. 스테파노바나 로드첸코프에 대해서 서방에서는 진실을 말한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로 평가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배신자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돌이켜 보면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생긴 분란의 상당수가 이와 유사한 경과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러시아 내에서의 인식과 러시아 밖에서의 인식이 크게 다른 일이 빈번한 것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문화적 배경과 이해관계, 상대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고 여기에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 특히나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래 러시아와 서방 간의 대립이 심한 상황이므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극대화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진실은 있을 것이므로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일 뿐이다. 그때까지 수천 만의 사람이 다르게 생각하고, 여기에 정치가 작동한다. 상호 대응하고 충돌하여 대가를 주고받는 일이 발생한다.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매일 생기는 것이다.

도핑과 러시아의 리우 올림픽 참가 문제를 보면서 러시아와 서방 세계 간의 인식의 갭은 얼마나 큰 것인지 또 이에 따른 대립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후기: 스테파노바 부부는 폭로 후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리우 올림픽에 특정 국가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오륜기를 달고 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해 왔다. WADA가 그녀의 출전을 지지하였고 국제육상연맹은 이것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IOC는 최종적으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리우 올림픽에 가지 못했다. 로드첸코프도 미국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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