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한국선 ‘위법성’ 없다는 폭스바겐…환경부 ‘차 교체명령’ 빨리 내려야

입력 2016-07-0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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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가스 조작’ 소송 주도하는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법무법인 바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미국은 18조 원, 한국은 100억 원. 배출가스 조작 사태를 일으킨 아우디폭스바겐(이하 폭스바겐)이 양국에 차별적인 피해배상 태도를 보이면서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는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피해에 대해 147억 달러(17조4000억 원)를 배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소비자 집단소송 합의액 중 최대 금액이다. 반면 한국에서 폭스바겐은 조작과 관련한 위법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책임감을 느끼는 만큼 10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게 고작이다.

국내 폭스바겐 소송에서 4432명의 원고를 대리하고 있는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 법무실 상임고문과 현대해상화재보험 사장,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을 지낸 기업인이었다. 약 4년 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로펌으로 돌아오면서 ‘반 기업적’ 성향을 갖게 된 것이냐는 물음이 요즘 그에게 따라붙는 이유다.

하 변호사는 오히려 기업에 장기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소송을 맡았다는 반응이다. 미국 법원과 폭스바겐의 합의로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새 국면에 들어선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이투데이는 하 변호사를 만나 이번 사태의 핵심과 전망에 대해 물었다.

미국과 한국 정부 담당자의 절박함 큰 차이

△18조 대 100억. 폭스바겐이 미국에서는 최고 수준의 합의를 진행하고 한국에서는 위법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바로잡을 것이 있다. 18조 원은 미국에서는 합리적인 수준의 합의 금액일 뿐, 대단히 큰 규모는 아니다. 법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과 정신적 위자료 규모가 나오면 몇 조 원씩 더 추가될 수 있다. 폭스바겐은 한국에서 그 합리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정상주행 상태에서 끄거나 저하시키는 임의설정 장치가 위법하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같은 EA189엔진을 사용한 차량인데도 미국에서는 임의설정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을 못 한다는 논리가 무엇인가.

“폭스바겐 측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법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임의설정 부품을 금지하는 규정이 국내에서는 폭스바겐 차량이 수입된 이후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법령도 시행령도 아닌 고시에 불과하다. 원칙 조항인 대기환경법 제46조와 제48조는 해당 차량이 수입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임의설정을 인정해야 한다. 폭스바겐이 대놓고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행태는 본질적으로 미국 환경당국과 국내 환경부의 문제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법무부, 캘리포니아대기자원위원회(CARB) 등 관계 당국은 문제가 된 부품 리콜(결함 수리)로 사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환불 조치를 내렸다. 기준치의 40배를 초과하는 오염물질을 뿜고 다니는 문제 차량을 하루빨리 길거리에서 없애겠다는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환경부는 국내 소비자들이 자동차 교체명령 요구를 청원했음에도 이를 거부했다. 폭스바겐은 벌써 세 번이나 리콜 계획서를 냈지만 환경부가 반려한 상태다. 리콜 계획서에 ‘임의설정을 시인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여전히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서만 기다리고 있다.”

기업-소비자-보험 삼각 선순환 이뤄져야

△현대차 법무실장에 계열 보험사와 그룹 사장직까지 역임한 기업인이 소비자를 대변하는 집단소송 대리인이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장기적으로 기업이 생존하려면 소비자와 함께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게 소신이다. 반기업적 성향과 오히려 반대라고 볼 수 있다. 기업과 소비자가 부딪쳤을 때 한국에서는 대부분 소비자가 마음에 한이 남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그 기업도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은 장래 구매자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기업에 발생하는 손해는 보험을 통해 일부 보장받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폭스바겐은 물론 최근 옥시사태 등 소비자가 ‘한이 맺히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무책임한 경영자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고 금전적 배상도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더 문제인가.

“처벌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물적 피해를 만회하고 정신적 위자료까지 보장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집단소송인들은 현재 미국 법원에도 집단소송을 낸 상태다. 국내에는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가 1이라고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는 3~10까지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실제 피해에 대한 정신적 위자료가 피해 규모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추락한 사건의 피해자 27명의 소송을 맡고 있다. 구체적인 합의금은 밝히기 어렵지만 미국과 한국에서 합의·판결 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차이가 난다. 현재 국내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타 지역 거주자의 재판을 거부하는 ‘불편한 법정의 원칙’이 있다. 일명 ‘땅콩회항’ 사건 피해자인 승무원이 미국 뉴욕주 법원에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각하됐다. 폭스바겐 소송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나.

“국내 배상 가능 규모나 소비자의 승소율이 미국보다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관련 사건이 들어오면 어떻게 미국 법원으로 가져갈지 먼저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폭스바겐 사건은 좀 더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 우선 결함이 발견된 폭스바겐 차종 중 파사트가 미국 테네시주 공장에서 만들어져 수입됐다. 또한 미국 폭스바겐에서 제작한 광고가 국내 광고에도 사용된 정황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23일 미국에 집단소송을 냈다. 우리 로펌과 미국 로펌 퀸 엠마뉴엘(Quinn Emanuel), 하게스 버먼(Hagens Berman)이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하게스 버먼은 원래 소비자 소송 전문 로펌이지만 대기업 측 대리 전문인 퀸 엠마뉴엘의 합류는 남다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퀸 엠마뉴엘은 폭스바겐 주가 하락에 대해 소송을 낸 주주들을 대리하고 있고 이 선상에서 법무법인 바른과도 손잡게 됐다.”

법원 판결 이전 합의가 선행돼야… 환경부 결단 ‘필수’

△국내 소비자들이 배상을 받기까지 어떤 과정이 남아 있나?

“우선 환경부의 자동차 교체명령이 빨리 나와야 한다. 이번 미국 법원과 폭스바겐 합의를 통해 우리나라 환경부가 큰 망신을 당했다. 미국 법무부 차관은 합의 내용을 발표하면서 폭스바겐의 행위에 대해 ‘극악무도한 위반행위(flagrant violation)’라고 비판했다. 대립 세력의 미사일 도발 등에나 사용하는 표현을 쓸 만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환경부 역시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서를 기약 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자동차 교체명령을 내려야 한다. 법원에서만 해결하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과거 현대차에서 일할 때도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결함 관련 소송을 많이 했지만 대부분 합의를 우선순위에 두고 진행했다. 미국보다 법원 판결로 기대할 수 있는 손해배상, 위자료 규모가 작은 국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내 재판기일도 가능하면 연내 잡히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어쨌든 결론이 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사태에도 국내 폭스바겐 차량 판매는 줄지 않았다. 불매 운동은커녕 할인 이벤트 등에 손쉽게 지갑을 여는 국내 소비자들의 의식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개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소비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소비자보다는 그간 기업에 솜방망이 규제를 한 정부의 문제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불법조작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에도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환경부가 폭스바겐에서도 이상점을 발견하고 소명을 요구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검찰이 박동훈 전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을 조사하는 것도 이런 의혹을 밝히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폭스바겐의 15개 차종, 12만5500대가 임의설정됐다고 판정했다. 다음 주에 집단소송 참여자 수를 다시 집계하면 45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는 6000명 이상이 소송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2011년에 환경부가 제대로 폭스바겐을 들여다봤다면 규모가 이만큼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책임질 부분을 과감히 털고 가는 것이 소비자에게는 물론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우리 당국자들이 인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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