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외에 에어프랑스 노조도 이달 11일부터 14일까지 파업했다. 이번 파업으로 TGV는 5대 중 4대, TER(지역권 급행열차)는 10대 중 7대, Intercites(중거리 도시 간 완행열차)는 2대 중 1대가 운행했다. 에어프랑스는 80% 운행했다. 한편 청소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파리 도처에 쌓여 있던 쓰레기는 민간 용역까지 동원한 파리시의 특별 작전으로 ‘유로 2016’ 개막일에 맞춰 수거됐다.
프랑스의 요란한 파업을 보면 당장에라도 파국이 들이닥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러한 파업 사태가 일상생활에 불편은 초래하지만 프랑스 사회를 마비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로 2016’은 예정대로 개막하고 우려했던 교통대란은 없었다. 이것이 프랑스의 수수께끼다.
이번 파업은 프랑스 정부의 노동법 개혁에 반대해 일어났다. 다른 주요 EU 국가들과는 달리 경직된 노동법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는 그동안 EU와 IMF 등으로부터 노동법을 개혁하라는 압력을 부단히 받아왔다. IMF는 프랑스의 현 개혁안도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는 5월 새 법안의 하원 통과를 위해 이례적으로 의회 표결이 필요 없는 긴급명령권을 동원했다. 법안은 13일부터 상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양원제인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하원 우위여서, 이 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번 노동 개혁은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좌파 정부에서 추진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고육지책은 내년 4, 5월(1차 및 결선) 실시 예정인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올랑드 대통령의 정치적 사활을 건 승부수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2012년 이후 5년째 10%를 웃돌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25% 수준에 달한다. 낮은 성장률에다 과도한 노동 보호가 겹친 결과다. 올랑드는 프랑스의 제2대 지방지 ‘SudOuest’와의 회견에서 “노동법 개혁안은 우리나라에 유용한 진일보한 법으로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올랑드의 지지율은 바닥을 쳐 집권 이래 최저인 11%라 더 이상 내려갈 여지가 없는 상태다.
개혁의 골자는 주 35시간인 노동시간을 최대 46시간까지 늘릴 수 있게 했고, 수주 실적이나 영업 이익이 줄면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해고 요건도 완화했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 이후 30년 이상 계속돼온 프랑스 좌파 노동정책의 대전환이다. 개정되는 노동법은 미리암 엘 콤리(Myriam El Khomri) 노동부 장관의 이름을 따 ‘엘 콤리 법’으로 명명됐다. 엘 콤리는 모로코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8세의 여성 정치인이다. 프랑스에는 장관의 이름을 딴 법안이 많다. 이는 정책입안 책임자인 장관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개별 회사 단위에서 타결된 노사 협상 결과가 업계나 산업 전체의 노사 협상에 선례로 작용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노조 측은 개별 회사 단위의 노사 협상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자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사회학자 다니엘 랭아르트는 르몽드지와의 회견에서 이는 “규범의 위계질서를 역행하는 것으로 고용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프랑스 여론은 이번 파업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열차 파업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한 통근자는 프랑스 민영TV ‘Tf1’과의 인터뷰에서 “더 힘든 직종이 많은데 철도 파업을 주도하는 기관사들의 행동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또 한 시민은 “민주주의는 투표로 하는 것인데 일부 과격 시위는 무정부나 마찬가지다”라고 개탄했다.
프랑스 국영철도 기관사들은 1년에 126일을 쉬는데 이는 역무원보다 12일이나 많은 것이다. 또 기관사들의 주당 근무시간은 35시간, 하루 평균 6시간 30분 이하이다. 그리고 중간 경력 기관사의 경우 보수가 세금 공제 후 월 3000유로(보너스 포함)로, 프랑스에서는 적은 임금이 아니며 국영철도 직종 중에는 가장 높다. 복지 수준이 높은 프랑스는 봉급에 대한 원천 징수가 많다.
프랑스 뉴스에 대해 평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영국 언론도 프랑스의 파업을 비중 있게 취급하고 있다. 중도 좌파(centre-left) 성향의 가디언(The Guardian)지는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는 경직된 노동법의 개혁으로 10%가 넘는 실업률을 낮추길 희망하나 근로자들은 그들이 ‘어렵게 쟁취한 특권과 권리’(hard-won privileges and rights)가 침해당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신문은 프랑스 파업은 겉으론 요란하지만 “일상생활은 조금 느려져서 그렇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비꼬았다.
신문은 또 ‘파업은 프랑스 DNA의 일부인가?’(Is striking part of the French DNA?) 제하의 기사에서 “거리 시위는 프랑스의 오랜 전통이다”라는 프랑스 역사학자 스테판 시로(Stephane Sirot)의 견해를 소개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사협상이 결렬되면 파업하는 게 통례인데 프랑스의 경우는 협상 전에 파업해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문은 각종 여론 조사에 의하면 노동 개혁을 지지하는 여론과 파업을 지지하는 여론이 거의 반반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오늘날 프랑스의 파업은 겉으로는 요란하지만 실제로는 종종 ‘노동계, 정부 그리고 일반 대중이 치밀하게 연출하는 무도회’(a carefully choreographed dance between labor, government and the public)라면서 이는 132년 역사를 지닌 프랑스 노조의 현주소라고 논평했다.
신문은 “프랑스에서 노조의 전성기는 지났으며”, “파업이 불편함은 주지만 나라를 완전히 문 닫게(shut down the country entirely)는 못 한다”고 논평했다. 이어 근로자들은 어디에서나 세계화의 거센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노조들은 분열돼 있다. 일부 노조는 정부의 노동 개혁을 수용할 태세이나 최대 노조인 ‘노조동맹’(CGT)은 이번 노동개혁이 ‘기업의 대변인이 된’ 좌파정부의 배신이라고 비난한다. CGT는 14일 프랑스 전역에서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파업 사태에 대해 강경 입장으로 일관하던 엘 콤리 노동부 장관은 처음으로 CGT 사무총장 필립 마르티네즈와 17일 만나기로 했다. 두 사람의 면담은 4개월간 계속된 노동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힘겨루기에 출구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베르나르 비비에 프랑스 고등노동연구소장은 11일 프랑스 공영방송 ‘A2’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법안을 철회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만큼 두 사람의 면담에서는 주로 주변적인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는 지금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유로 2016’은 역대 경기 중 가장 삼엄한 경비 속에 치러지고 있다. 지난 10일 프랑스와 루마니아 간의 개막전이 열린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는 작년 11월 13일 IS 테러의 목표물이 됐던 곳이다. 프랑스 전역은 현재 비상사태하에 있다. 작년 파리 테러 직후 선포된 국가 비상사태는 7월 말까지 계속된다. 7월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자전거 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른 프랑스가 노동개혁, ‘테러와의 전쟁’ 등 21세기의 국내외 도전을 잘 감당해낼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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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헤럴드 파리지사장,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대통령 해외공보비서관, 문화관광부 정부간행물제작소장 역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기사장’ 수훈. 저서 ‘프랑스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