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구의역의 컵라면

입력 2016-06-09 13:05수정 2016-06-1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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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하늘로 간 열아홉 살 김모군. 그 젊은 죽음을 접한 이들의 가슴을 더 흔들고 더 깊이 후벼 판 건 작업가방 속에 있었던 컵라면이었다. 그 컵라면과 옆에 놓인 숟가락은 비명에 간 한 젊은이의 마지막 순간을 더욱 애틋하고 비통하게 만들었다.

1972년 삼양식품은 국내 처음으로 ‘끓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내 최초의 컵라면은 봉지라면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 때문에 당장에는 빛을 못 봤다. 간편성이 아직은 그다지 중요히 여겨지지 않던 때였다. 컵라면 시장은 1981년 농심이 사발면을 출시하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간편성 추구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때였다. 삶에 쫓겨 언제나 바쁜 사람들을 위한 각종 1회용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범람하기 직전이었다.

이때는 또 사람을 더 간편하게 부릴 수 있는 제도와 시장(인력시장, 용역업체, 파견직, 비정규직 등)이 개발되고 보급되면서 1회용 제품처럼 거래되는 노동도 막 늘어나던 때였다. 그럴수록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컵라면도 더 많이 팔렸을 게다. 컵라면 용기 속에서 일의 고단함과 가혹함이 라면 가닥처럼 얽혀 있는 것을 보게 된 사람들도 많아졌을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컵라면이 김군의 죽음을 지금처럼 애통하게 만들 수는 없었을 테니!

컵라면은 김군의 죽음을 접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애통하게 만들었지만 ‘메피아’는 김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긴 사람들의 마음을 격분시켰다. 메피아의 농간이 김군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피아는 서울메트로의 ‘메’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서울메트로 임직원들과 퇴직자들은 왜 마피아 대접을 받게 되었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처럼 자기들끼리 결탁하고 야합했으며, 그 결과 김군과 그의 비정규직 동료들이 착취당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1~4호선 운영주체인 서울메트로가 퇴직자들을 스크린도어 수리 하청업체인 은성PSD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서 김군과 같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월급여 144만원보다 3배나 많은 급여를 받도록 했다는 사실, 그런 낙하산이 이 회사 스크린도어 수리인력 125명의 30%나 된다는 사실, 그렇지만 그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아니 기본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어서 일을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 그러니 스크린도어 수리는 김군과 같은 비정규직이 도맡아야 했다는 사실, 그래서 김군이 컵라면 먹을 시간조차 없이 일과 시간에 쫓겨야 했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은 서울메트로의 노사합의에 의한 것이며, 서울메트로는 이 합의를 은성PSD와의 하청계약에 명시했다는 사실이 기득권 지키기와 더러운 갑을관계의 악취 나는 사례가 아니면 무엇인가?

▲컵라면과 수저 등 김군의 가방에 들어 있던 ‘생필품’이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우리나라에는 일일이 손으로 꼽기에도 벅찰 만큼 ‘~피아’가 많다. 사건만 터지면 그 뒤에 ‘~피아’가 있었다. 몇 개만 꼽아보자. 모피아(금융계 인사이동이 부적절하게 이뤄졌을 때, 재무 공무원과 금융기관의 결탁), 해피아(세월호 사건 때, 해양 공무원과 해양 관련업체의 결탁), 군피아(방산비리가 터져 나올 때, 군인들과 방위산업체의 결탁), 세피아(탈세와 부당한 조세감면이 드러났을 때, 세무공무원과 관련업체의 결탁) 등이 그것들이다.

우리나라의 이 많은 ‘~피아’들은 ‘~피아’라는 이름을 붙이기 부끄러운 존재들이다. 진짜 마피아, 즉 영화 ‘대부(God Father)’ 시대의 마피아들은 돈을 뜯는 대가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약자(을)들을 힘으로 지켜주었는데, 우리나라의 그 많은 ‘~피아’들은 거의가 일방적으로 뜯어내기만 했기 때문이다. 진짜 마피아들은 매춘과 마약이 새로운 돈벌이로 떠올랐어도 자신들의 윤리에 벗어난다며 손을 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피아’들은 푼돈과 눈물 묻은 돈도 마구 뜯어냈다. 김군이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해도 아무 일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낮은 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들은 ‘~피아’가 아니라 동네 뒷골목에 숨어서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 주머니나 털어내는 ‘양아치’였다.

이 기득권의 고리를 어떻게 깨뜨리나!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기득권은 깨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어디서나 배고픈 사람들이 사는가 하면 포식하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도 살고, 어디서나 양과 늑대들이 있어. 세상에는 아직도 깨뜨리지 못할 법이 하나 남아 있는데-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 하는 정글의 법칙이지”라고 썼다. 소설 ‘희랍인 조르바’에서 자유로운 삶을 예찬했던 카잔차키스도 기득권의 공고함 앞에서는 어찌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기득권과 윤리를 혼동하지 말라”는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운동가 막스 러너(1902~1992)의 경구는 기득권을 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지키려 했던 기득권자들을 통박한 것이다. 윤리로 포장된 기득권은 더욱 깨기 어렵다.

하지만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인류의 역사에서 진짜 다툼은 기득권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벌어져왔다”고 했다.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던 그의 말은 기득권에 도전해 사회정의를 세우려 한 노력 덕분에 인류가 지금까지 그나마 발전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기득권이 있는 사회는 공평하고 정직함을 파괴하려는 세력을 환영하는 사회이다”라는 미국의 진보적 사상가 아그네스 레플리어(1855~1950)의 단언 역시 기득권을 깨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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