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속 '장남' 편에서 '차남' 편으로 변심… '신동빈 체제' 구축 기여
지난해 7월 27일 '경영권 분쟁'의 촉발이 됐던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 동행했고, 다음날인 저녁 신 총괄회장과 함께 귀국한 사람도 다름 아닌 신 인사장이였다. 그는 이날 밤 귀국길에 취재진이 몰리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나올때 "아버지, 가만 계세요"라고 정리를 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해를 넘기며 이어져 온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최근 '신동빈 회장의 한ㆍ일 원톱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신 이사장의 '변심'의 영향이 컸다. 신 이사장은 경영에서 물러나고, 지분도 많지 않지만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 대결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계 안팎에서는 롯데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의 귀를 잡고 있다'는 소리까지 흘러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가 경영권 분쟁 초반 신 전 부회장을 지지했던 것에서 신 회장 편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면 사실상 '경영권 분쟁' 종식에 일등공신으로 기여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후 롯데그룹이 '신동빈의 원톱 체제'를 선포하면서 사업이 안정국면에 들어서자 다시 신 이사장에 대한 업계 안팎의 관심을 멀어졌다. 그러나 최근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다시 '롯데가 맏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해 2일 오전 롯데호텔 면세사업부와 신 이사장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정 대표가 브로커를 동원해 네이처리퍼블릭의 면세점 입점을 위해 신 이사장 등 롯데쪽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건넨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신 이사장 측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는 롯데가 맏딸= 신 총괄회장은 1940년 고향인 울주군 삼동면에서 고(故) 노순화 씨를 부인으로 맞아 장녀인 신 이사장을 낳았다. 노순화 씨는 1951년 29세에 세상을 떴다.
신 총괄회장은 장녀(신영자)가 태어나기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早稻田大) 화학과를 졸업한 후 1948년 한·일 롯데그룹의 모태가 되는 롯데를 설립하며 일본에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의 손길 없이 자라다 11세에 어머니마저 잃은 신 이사장에 대해 신 총괄회장은 늘 애틋함을 지녀온 것으로 전해진다.
신 이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롯데그룹에 입사해 1970∼1980년대 호텔과 쇼핑사업 실무를 총괄하는 등 능력을 발휘했다. 또 신 총괄회장의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매년 열었던 마을잔치를 매년 살뜰히 챙겨 신 총괄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에서 실질 지분율 외에 신 총괄회장의 뜻을 결정할 '캐스팅보트'를 신 이사장이 쥐고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신 총괄회장이 큰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신 이사장의 조언을 대부분 받아들인다는 것이 재계의 전언이다.
◇롯데쇼핑과 함께한 30년, 재계 '여풍당당' 이끈 주역= 2009년 11월 롯데쇼핑 30주년 기념식이 열린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장기근속자 시상식에서 10년, 15년, 20년 근속자들에게 일일이 축하의 말을 건네던 신영자 이사장(당시 롯데쇼핑 사장)이 오히려 30년 근속 수상자로 장내에 이름이 불리어졌다. 재계 5위 롯데그룹 오너 2세가 30년 근속으로 회사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것이었다.
신 이사장은 30대 때부터 일찌감치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73년 5월 롯데호텔에 처음으로 입사했고,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 당시부터 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겨 롯데백화점 도약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롯데백화점이 국내 제1의 백화점으로서의 명성을 떨칠 때에 영업이사를 맡으며 일선 영업을 이끌었다. 이후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을 거쳐 총괄사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신 이사장은 롯데그룹 유통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2006년 당시 롯데쇼핑 상장을 앞두고 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그해 1월 신 이사장(당시 부사장)은 롯데쇼핑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이사 수 초과'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2년간 등기이사에서 빠졌다.
2009년 4월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사장과 롯데호텔 면세사업부 사장에 선임돼 '여왕의 귀환'을 알리는 듯 했지만 이 또한 예우차원에서 비롯된 것여서 이후 후계구도에서는 완전히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 회장이 주도권을 잡아가던 2012년에는 롯데쇼핑 사장직에서 물러나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사회공헌활동만 맡고 있다.
◇'여자로서의 아쉬움'… 가족에 대한 남다른 사랑= 신 이사장은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나 자식들과의 독립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론에 어떤 입장도 내비치지 않았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아버지의 평소 뜻이기도 했지만 집안의 맏딸로서 가족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신 이사장이 맏딸로서 아버지 신 회장과 동주, 동빈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구보다 애틋하다. 서울대 임종원 교수가 쓴 '롯데와 신격호'라는 책에서 신 이사장은 그동안 가족과 그룹 경영에 대한 숨겨놨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신 이사장은 "원래 아버지가 하시고 싶어 했던 사업은 철강, 자동차, 가전사업과 같은 중공업 쪽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하시고자 했던 사업의 뜻을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집안의 중심이 되어드려 아버지가 마음 아파하시지 않게 했을텐데, 하는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맏딸로서 아버지 형제들의 잘못된 경영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후계자 겸 아들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여자의 한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신격호 회장님은 저의 아버님이시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모습이나 평소 생활하시는 모습 모두가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존경스럽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롯데그룹이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을 당시 초반 신 이사장의 스탠스가 신 전 부회장쪽으로 기울어졌을때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이 롯데의 성장 과정에서 적잖은 기여를 했지만, 신 회장이 실권을 잡은 뒤 순식간에 밀려나 섭섭하게 여긴다는 얘기가 많다"고 평가하면서 '앙금'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에 대해 신 이사장이 찬성 입장을 나타내면서 완전히 '신동빈 편'에 섰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성년후견인 지정은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은 반대하고, 신동빈 회장은 찬성하고 있어 신 이사장의 행보는 신동빈 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신 이사장이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보장받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기도 한다.
신 이사장 보유 지분을 계열사 별로 보면 롯데쇼핑(0.74%), 롯데제과(2.52%), 롯데칠성음료(2.66%), 롯데푸드(1.09%), 롯데정보통신(3.51%), 롯데건설(0.14%), 롯데알미늄(0.12%), 롯데카드(0.17%), 롯데캐피탈(0.53%), 대홍기획(6.24%) 등이다. 또 신 이사장이 이끄는 롯데장학재단도 롯데제과(8.69%), 롯데칠성음료(6.28%), 롯데푸드 (4.1%), 롯데정보통신(1.0%), 롯데캐피탈(0.48%) 등 롯데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