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 돈 눈먼 변호사·특수통 전관·브로커 얽혀

입력 2016-05-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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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사기’ 송창수 50억에 최유정 변호사 선임→항소심 집유→정운호에 최 변호사 소개… 정운호 변호 홍만표, 탈세 의혹… 브로커 이민희 담당 부장판사 만나 정운호 구명로비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정 대표의 항소심 변론을 맡았던 최유정(46) 변호사가 폭행 혐의로 정 대표를 고소하면서 알려진 이 사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다.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전관 변호사들이 형사사건을 맡으면서 법원과 검찰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법조 비리 의혹과 함께 네이처리퍼블릭의 사업 확장에 전문 브로커가 개입해 부적절한 로비를 벌였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100억 수임료 ‘큰손’ 정운호와 송창수=최 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인 검찰은 최 변호사가 사건 수임료 명목으로 받은 돈이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50억원은 정 대표의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서 받은 것이고, 나머지 50억원은 송창수(40) 전 이숨투자자문 대표의 형사사건 수임료다. 송씨는 2013년 인베스트컴퍼니를 차리고 100억원대 사기와 유사수신,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송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최 변호사를 선임했고, 2개월 뒤인 같은 해 10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당시 사기 피해자들은 이 항소심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액을 변제한 것을 감형의 주요 사유로 제시했는데, 그 돈이 1300억원대 ‘이숨투자자문’ 사기로 거둔 것이라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송씨는 이숨투자자문 사기 건으로 곧바로 다시 구속됐고, 교도소에서 정 대표를 만나 최 변호사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 의혹 변호사 최유정과 홍만표=구속된 최 변호사는 현재 검찰 조사 과정에서 수임료 내역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가 2건의 사건을 수임하면서 받은 100억원은 변호사 업계에서 통용되는 금액을 훨씬 넘어선다. 과거 한 대기업 총수 재판을 맡았던 유명 전관 변호사가 한 건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법조계에서는 그것도 부풀려진 거라는 시각이 많았다. 일반인이 개인 법률사무소에 형사사건을 의뢰할 경우 착수금 수백만원을 지급하고 선지급된 것보다 높은 수준의 성공보수를 주기로 하는 게 보통이다. 지난해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 판결이 나오면서 사건 초기에 지급하는 비용이 올라간 면도 있지만, 단순 형사사건은 1000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수임료가 형성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 변호사에 대한 형사처벌과 별개로 징계도 검토하고 있다. 사건 수임 과정에서 절차를 어긴 사실이 있는지, 정 대표와 폭로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변호사로서 지켜야 할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을 따져볼 계획이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정 대표의 변호를 맡았던 홍만표(57) 변호사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홍 변호사는 정 대표의 수사 과정에 선임계를 내지 않고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이 홍 변호사의 사무실과 그가 실질적으로 관여한 부동산 투자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정 대표와 별개로 홍 변호사의 탈세, 부적절 사건 수임 의혹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홍 변호사는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낸 검찰에서도 손꼽히는 특수통 출신이다. 김경수 전 고검장, 최재경 전 검사장과 함께 ‘17기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가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를 진행하는 데 어려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의혹 규명 ‘키맨’…브로커 3인방=정 대표를 둘러싼 의혹에는 전문 사건 브로커들이 여럿 얽혀 있다. 최근 구속된 이민희(56)씨는 정 대표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동문인 홍 변호사를 소개한 인물이다. 평소 법조계 고위직 인사는 물론 국회의원과 경찰 간부, 청와대 인사 등과의 친분을 내세우는 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메트로 입점 로비자금 명목으로 정 대표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평소 호텔 부회장, 사업체 대표 등의 직함을 가지고 고가의 외제차를 몰며 ‘해결사’ 역할을 해오던 이씨는 정 대표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씨는 정 대표의 항소심 재판장을 직접 만나 식사 접대를 하며 구명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현재 검찰이 수배 중인 A씨는 최유정 변호사의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한 인물이다. 당시 A씨는 경찰에 ‘사실혼 남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거액 수임료 논란이 빚어지자 정 대표와 폭로전을 벌이면서 최 변호사의 거액 수임료가 드러나게 되는 등 논란을 키웠다. 이숨투자자문 사기사건 주범 송씨에게 최 변호사를 소개한 것도 A씨다. 최 변호사가 서초동에 개인사무실을 열 때부터 업무에 관여했고, 수임료 배분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내막을 알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검찰은 현재 A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군납 로비 명목에 관여한 또 다른 브로커 한 모씨에 대해서는 롯데백화점 면세점 입점을 추진하면서 부적절한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다. 특정 기업인과 공직자의 실명도 거론된다. 검찰은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씨를 상대로 세간에 떠돌고 있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수사·재판 공정했을까… ‘법조 로비’ 의혹받는 판·검사들 =정 대표와 송씨의 구명 로비와 관련해서는 여러 명의 현직 법조인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민희씨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던 임모 부장판사는 이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에 사의를 표명했다. 임 부장판사는 정 대표 사건이 자신에게 배당된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씨를 만났고, 식사 자리에서 사건 얘기를 꺼내자 바로 법원에 요청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돌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수의 법조인들은 임 부장판사가 이씨를 오래 알고 지내면서 그가 사건 브로커인 것을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사건에 영향을 주지 않았더라도 부적절한 친분관계를 유지한 자체로 논란이 된다는 것이다.

이숨투자자문 사기 피해자들은 송씨의 인베스트컴퍼니 사건 재판 과정에도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이 재판 항소심을 맡자마자 집행유예가 나올 거라고 확신이라도 한 듯 빠른 재판 진행을 요구했고, 실제로 송씨는 감형을 받고 풀려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송씨의 죄질이 나쁘고 다른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징역 4년에서 집행유예로 감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전관 로비 핵심은 정 대표보다 송씨 사건 항소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송씨의 항소심 재판을 맡은 재판장을 아는 지인들은 다른 사건에서도 양형이 관대했고, 평소 법원 안팎의 인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B검사와 C부장검사가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B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로 일하면서 정 대표의 해외 원정 도박 사건을 수사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형사부가 아닌 강력부에서 수사를 진행하면서 정 대표의 도박혐의가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은 “1심 형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항소했음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구형량을 낮췄다. 또 정씨가 보석신청을 낸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적의처리 의견’을 제출했다. A검사가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는 검찰 출신인 홍 변호사가, 항소심 과정에서 구형량을 낮추는 과정에는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C부장검사와 동향 출신인 최 변호사가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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