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김영란법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6-05-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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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란법’ 시행령이 확정됐다. 식사비는 3만 원까지, 경조사비는 10만 원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선물의 상한액은 5만 원으로 결정됐다. 이걸 두고 너무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식사 값이 1인당 3만 원이면 저녁 때 소주에다 삼겹살은 가능하지만, 쇠고기나 장어 같은 음식은 곤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연고주의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경조사 비용까지 제한하는 것은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 5만 원짜리 선물을 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다양한 부패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경제력에 비하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부패에 있어서도 문화적 특징이 반영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문화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부패의 유형은 이른바 네포티즘이다. 네포티즘이란 가족주의 혹은 연고주의에서 파생되는 부패 유형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부패는 그래서 가족주의와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학연이나 혈연과 같은 집단주의적 부패 유형도 네포티즘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왜 부패가 뿌리 뽑히지 않는지를 대충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고주의에 입각한 부패는 그냥 둬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종의 문화와 관련돼 나타나는 부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김영란법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두고 경제 활성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선물의 상한선을 5만 원으로 규정할 때, 명절에 내수가 위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웬만한 화환은 10만 원을 넘기 때문에 화훼업자들도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도 가능하다. 내수가 명절 때 오가는 고가의 선물로 일시적으로 살아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해악적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지금과 같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회자본을 없애는 데 이런 분위기가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자본의 핵심은 신뢰다. 하지만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부정과 부패가 횡행하게 된다면 사회적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릴 것이고, 건전한 경제의 근간 역시 무너져 버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신뢰는 사회 양극화가 진행될 때 더욱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갖고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흙수저-금수저 논란이 있는 것도 희망의 크기를 더욱 줄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이들을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불공정을 없애는 일일 것이다. 힘 있는 자들이 자식들의 취업 청탁이나 하고 있으면, 열심히 살려는 젊은이들의 희망을 여지없이 짓뭉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정부패의 청산 여부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처음은 좀 불편하더라도 우리 모두 참아내야 한다. 참아내는 것이 바로 미래의 희망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의 경제적 손해는 장기적 차원에서는 결국 사회적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자. 이런 사회적 합의만이 어려움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희망을 뺏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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