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⑩] 최진영 보험연수원장

입력 2016-04-19 10:43수정 2016-04-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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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접목한 증권집단소송 유예… 기업 ‘고해성사’ 유도

▲지난 30년 동안 금융당국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한 최진영 보험연수원장이 18일 서울 성북구 보문로에 위치한 보험연수원 7층 원장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최 원장은 “투명한 회계는 다양한 이해 관계를 조정한다”고 강조했다.(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사명감으로 기업을 감사하거나 회계의 투명성을 높였던 분들은 정말 많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 보문로에 있는 보험연수원에서 만난 최진영 원장(58ㆍ전 금융감독원 회계 전문 심의위원)이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면서 한 첫마디다. 그는 “회계 분야에서 훌륭한 분들이 정말 많은데…”라며 망설였다. 최 원장은 회계 1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원로는 아니었다. 또 감독당국에서 일한 그였기에 회계업계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날 오후 2시30분. 북쪽과 동쪽으로 나 있는 보험연수원 7층 원장실의 창에는 햇빛이 가득했다. 눈은 부셨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최 원장은 “업계 관계자들의 헌신 일부를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일 것”이라고 운을 떼고서 말문을 열었다.

◇2005년 증권집단소송제 유예 “이상과 현실 접목한 정책”= 그는 1986년 증권감독원에 입사했다. 그 후로 30년을 올 곧이 회계 부문에서 일했다. 1990년대 이후 기업 감리 강화, 외환위기, 대우그룹 분식회계, 증권집단소송 제도 유예 정책, 쌍용차 사태 등 굵직한 현안의 한복판에서 최 원장은 늘 중심에 있었다.

최 원장은 이 중 증권집단소송 제도의 2년 유예 정책을 2000년 이후 한국 회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페이지로 꼽았다. 그는 “당시 금융당국은 기업들이 2년간 과거 분식회계를 수정하면 감리에 착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우린 증권집단소송 유예를 ‘기업 고해성사’ 정책이라고 불렀다”고 평가했다.

증권집단소송 제도는 증권거래 과정에서 50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대표 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고 나머지 피해자들은 판결 효력에 따라 구제받는 제도다. 증권집단소송법은 2003년 12월 제정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시행을 1년 유보하면서 유예 정책 마련의 근거를 만들었다. 이후 2005년 3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향후 2년 동안 해당 법의 적용이 유예됐다.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최 원장은 “당시 윤증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증권집단소송 제도 적용 유예 마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압축 성장기를 겪었던 기업은 수출과 고용을 크게 늘리는 성과를 냈지만 이 과정에서 편법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윤 원장은 ‘기업에 숨 쉴 틈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집단소송 제도 유예가 추진된 것은 2003년 드러난 SK글로벌의 1조5817억원의 분식 회계 사건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최 원장은 “대부분 대기업이 현재 지배구조에서 분식으로 끙끙대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회계는 한 번 분식하면 계속 할 수밖에 없어 끓고 갈 계기가 필요했다”고 했다.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 시민단체는 증권집단소송 제도의 유예책은 곧 무력화 방안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정부 당국과 시민단체의 공개 토론회도 수차례 열렸다. 감사원의 감사도 받았다. 정부가 2007년 발표한 ‘기업투명성 제고 종합대책’은 뒷북 정책이라는 뭇매를 맞기도 했다.

최 원장은 “당시 시만단체에서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증권집단소송 제도 유예는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2년간의 증권집단소송 제도 유예로 기업은 고성장기 때 누적된 분식회계를 털어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증권집단소송이 단번에 몰아쳐 기업이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예방했다는 것이 최 원장의 설명이다.

“당시 기업들은 수정 손익 계정이 아닌, 당기 매출원가 계정을 통해 과거 잘못한 회계를 수정했다. 우린 대차대조표만 봤기 때문에 몇 개의 기업이 어느 정도 규모의 과거 분식회계를 수정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금융업종 회계준칙 제정, 대대적 회계 개혁 첫 단추= 최 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금융업종의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 마련 때 일선에서 뛰었다. 당시 증권감독원 과장이었던 최 원장은 회계제도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곳에서 그는 국내외 민간 전문가와 함께 금융 업종별 회계처리준칙을 만들었다.

최 원장은 “외환위기 이전 은행감독원의 주요 정책 목표는 금융시장의 안정이었다. 은행이 유화증권 손실을 일부 숨기고 대손충당금 설정을 줄이는 것은 감독당국 주도로 이뤄졌다”며 1990년대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는 은행이 적자가 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며 “은행 감독당국과 투자자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으니 외자를 유치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당시 은행감독원장과 증권감독원장을 겸임했던 이헌재 전 부총리는 회계제도특별위원회를 구성,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했다. 이곳에서는 금융업종 회계처리준칙뿐 아니라 기업집단을 분석할 수 있는 결합 재무제표도 만들었다.

최 원장은 “은행들은 재무제표가 수정되면 퇴출의 위기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노심초사했다”며 “하지만 정책의 방향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투명한 재무제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의혹 사태와 같이 기업 투명성은 지금도 중요 현안이다.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의 21조원 분식회계 사태 충격은 컸다. 정부는 서둘러 여러 정책을 내놨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흘렀다. 강산은 변했지만 수요자 중심의 회계 시장은 여전히 분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최 원장은 당국의 기업 감리 권한 확보와 외부 감사인 지정을 제도 측면에서의 성과로 봤다. 그는 “1980년 외감범(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도입된 이후 처음부터 기업의 감리 권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초기에는 공인회계사가 절차대로 감사를 했는지 서류상으로 보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1990년 3월 외감법이 개정되면서 기업의 실질 감리가 가능해졌다. 증권감독원이 기업의 감사인을 직접 지정하는 ‘외부 감사인 지정제도’도 당시에 마련됐다. 최 원장은 “회계법인의 기업 감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한 장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최 원장은 기업 회계가 더욱 투명해지려면 지배구조가 윤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봤다.

“재무제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재무제표가 투명하고 신뢰가 있다면 노사 등의 갈등도 크게 줄 수 있다. 숫자가 대화의 매개체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윤리를 담보로 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어야만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회계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사회적 비용 없이 이뤄질 것으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 원장은 끝으로 “서양 문화가 근대 문화를 주도한 것은 복식부기 회계가 발전했기 때문이란 일부 학자의 평가도 있다”며 “시장 경제가 선순환 하기 위해서는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투명한 회계 정보가 산출되는 것에 늘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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